2014. 9. 5. 금.


아버지를 여의고 맞는 두 번째 추석이다. 살아계실 때 아버지는 명절이면 어김없이 온 식구를 이끌고 고향을 찾으셨다. 어린 시절 우리 식구는 명절이면 비둘기호나 통일호를 타고 몇 시간을 달린 후에, 다시 안내원이 '출발'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차벽을 두드리는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비포장 시골 길을 한참을 달렸다. 그래야 아버지의 고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후 내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께서 친구분으로부터 폐차 직전의 중고차 '포니'를 얻으시기 전까지 아버지의 고향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고행길'이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명절이면 고집스럽게 고향으로 찾아가서, 우리 형제를 데리고 동네 어르신들 댁을 찾아 다니며 인사를 시키시곤 했다. 이제는 시골의 그 어르신들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큰아버지도, 아버지도 모두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추석을 앞두고 이 글 속에 이분들을 모셔다 놓고 잠깐 회상에 잠긴다. 언젠가 우리 모두의 본향인 그 나라에서 오손도손 모일 것을 희망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