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지하철 환승역. 약속 시각에 늦지 않으려고 지하통로를 바쁘게 뛰어 가는데, 어디선가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큰 소리는 아니지만 그 기침에 묻어 있는 고통이 너무 날카로워서 뛰어 가면서도 흘깃 돌아보니, 노숙자로 보이는 한 노쇠한 남성이 차가운 바닥 위에 옆으로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1~2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 굉장히 짧은 순간이었는데, 피골이 상접한 새까만 피부, 매우 괴로운 듯 질끈 감은 눈, 기침할 때마다 입에서 튀어 나오는 거품과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초록색 소주병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 왔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고 멈춤 없이 달리는데 아주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아, 저 분은 얼마 못 가 돌아 가시겠구나!' '돈을 드려도 모두 저 술병으로 들어 가겠지?' '왜 저렇게 살고 계시는 걸까?' '내 노트북에는 삶의 의미에 관한 설교문이 많은데... 지금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겠지.'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몇 초도 안 되어 사라지고 나는 다시 행인들 틈을 비집고 달리는 데에 집중했다.

땀 흘리며 무거운 여행용 가방을 들고 뛴 보람도 없이 방금 열차가 지나가버려 난 플랫폼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환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원한 전철 안에 앉아 있어도 가슴이 계속 답답하고 불편했다. 그리고 문득 조금 전 지하통로에서 스치고 지나온 그 불쌍한 노인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바쁘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거라는 핑계로 그를 외면한 채 달리기만 했으니, 가방 속 컴퓨터 안에 담겨져 있는 공들인 그 설교문과 강의안과 에세이들이 그 분이 깔고 있던 폐지 조각만 못하구나.

나는 왜 그때 달음질을 멈추고 목숨이 위태로워 보이는 그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을까? 너무 바빠서? 그가 변할 가능성이 없어 보여서? 그가 너무 술에 취해 있어서? 노숙자를 돌보는 일은 바쁜 내가 할 일이 아니어서? 아니면 이렇게 나의 사랑 없음을 변호해 줄 '타당한 이유들'이 많아서? 알 수 없다.

점심에는 좋은 식당에서 한 그릇에 만오천 원이나 하는 삼계탕을 대접 받았다. 그릇을 비우는데 다시 그 노숙인이 생각 나 마음이 불편해졌다. '난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는데... 만약 그 돈으로 따뜻한 국밥 두 그릇을 사서 그 노인과 나눠 먹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 이미 지나가 버려 이룰 수 없는 상상을 끝으로 식사를 끝냈다.

그리고 밤. 많은 일들이 있었던 일과를 끝내고, 하루를 돌아 보는데 다시 그 노숙인이 떠오른다. 그리고 함께 떠오르는 아버지의 모습, 중환자실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시던. 이제 알겠다, 왜 그 노인의 모습이 그리 인상적으로 마음에 새겨졌는지를,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는지를.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는 4년이 휠씬 넘었지만 아버지의 고통은 내 기억의 밑박닥에 새겨져 지금도 계속 되고 있구나.

"고통아, 잊혀지지 말거라. 세월에 풍화되지 말거라. 어둡고 습한 지하통로 바닥의 노숙자의 비명 같은 기침을 통해,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들을 통해 다시 내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나거라. 그래서 나로 하여금 허겁지겁 달리는 것을 멈추게 하라. 그리고 말이 아니라 손을 내밀어 그 얼굴들을 위로하게 하라."

2017.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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