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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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코끝이 시큰해지며 눈물 날 것 같은 날이 있습니다. 특별히 슬픈 일이 있는 것도, 아주 아픈 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별다른 이유 없이 봄비에 마음 젖어드는 날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 가만히 눈 감고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마치 소라 껍데기에 귀를 갖다 댄 듯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그것을 바닥이 없는 검은 구멍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또는 강가에 홀로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사람의 그윽한 눈동자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묘사하고, 어떤 이름을 붙이든지 분명한 것은 그건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실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움입니다.


제가 만난 어느 시인은 인간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 내재하는 힘 또는 정서는 그리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최초의 자서전으로 여겨지는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고백록은 한 인간이 진리, 곧 신을 찾아 가는 영적 여행의 이야기인데, 이 여행을 떠나고 지속하게 하는 동력은 창조주를 향한 피조된 인간의 그리움입니다. 심지어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도 이런 그리움을 갖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그리움은 마음 깊은 곳에 항상 내재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에 주의를 빼앗기거나 바쁜 일들 속에 살아가느라 잊고 지낼 때가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자신을 대면하는 고독의 순간이 찾아오면, 자신에게 귀 기울여 달라고 외치는 그리움의 호소가 소라 고동 속의 소리처럼 커다랗게 울려옵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리움은 평소 길을 걷는 중에도 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처럼 어느 날 문득 나타나기도 합니다.

 

향기

 

 

길을 걷다가

 

문득

그대 향기 스칩니다

 

뒤를 돌아다봅니다

 

꽃도

그대도 없습니다

 

혼자

 

웃습니다

 

- 김용택 향기전문.

 

이 시는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의 나무(2002)에 실린 작품입니다. 이 시의 화자는 길을 걷다가 갑자기 꽃향기, 또는 그대의 향기를 맡게 됩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꽃과 그대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논리적으로는 향기(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향기를 내보내는 존재(원인)가 있어야 하는데, 이 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논리적 사고에 익숙한 독자라면 고개를 갸우뚱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보통 시인들은 이런 시적 모순을 사용하여 보통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통찰이나 경험을 묘사하려고 하지요.


김용택의 나무에서 ’, ‘그대’, 또는 라는 시어는 그리움의 대상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 시집에 실린 봄바람에 실려가는 꽃잎 같은 너의 잎술이라는 시에서 그리움을 뚫고/ 오는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은 시인이 간절히 기다리는 나의 시, “시는 세상의 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향기에서 시적 화자가 뒤를 돌아보며 찾으려고 했던 그대도 시인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리움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움이란 시공간적으로 멀리 있거나 부재하다고 인식되는 대상을 향한 정서입니다. 그러므로 향기, 곧 그리움은 있으나, 그리움의 대상인 꽃과 그대는 뒤를 돌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꽃도, 그대도 없는데, 시적 화자는 슬퍼하거나 절망하기는커녕 혼자 웃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고, 시인은 의도적으로 모호성을 독자에게 선물로 남겨 두는 듯합니다. 의미는 시를 감상하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시가 주는 힌트는 혼자웃습니다가 각각 한 연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단어로 한 연을 구성한 것은 독자들이 그 단어를 주목하고 좀 더 오래 음미하기를 바란다는 시인의 신호입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꽃과 그대는 시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그리워하는 그대는 누구입니까? 개화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꽃은 무엇입니까?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꽃향기를 맡게 된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리움과 더불어 혼자머물러 보십시오. 그러면 언젠가는 그리움을 뚫고 오는 당신의 꽃을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때는 이 시 향기에서 그가 혼자 웃는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Magazine Hub 60 (2018년 4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