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날적이/사역일기 2020. 10. 28. 10:56

요즘 코로나19로 승객이 줄어든 항공사가 출발지에서 출발지로 돌아오는 비행 상품을 내놓았는데, 인기가 많다고 한다. 승객들은 어떤 특정한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비행 체험을 하기 위해서 표를 구입하고 탑승한다.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한반도 상공을 날면서 경치도 구경하고, 기내식도 먹는다. 이것은 정말 실제 비행이니 VR(가상현실)로는 얻을 수 없는 진짜 경험을 승객들에게 제공한다. 사람들은 출발지에서 이륙해서, 다시 출발지로 착륙하기 때문에 그들의 지리적 위치는 비행 이전이나 이후나 그대로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 비행 체험으로 인해 달라진 사람이 되어 비행기에서 내린다.

 

오늘 영락수련원 화요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이런 '비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원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은 기대를 가지고 일상을 떠나 남한산성으로 올라오신다.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사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두어 시간 거리에서 대중교통을 여러 번이나 갈아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 오시는 분들도 있다. 그렇게 올라오셔서 순전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시고, 감사함으로 '수련원 밥'을 드시고(물론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자연 속을 거닐다가 내려가신다.

 

다들 각자의 삶의 자리를 떠나 와서, 반나절 또는 한나절 수련원에 머무르다가 다시 똑같은 삶의 자리로 돌아가지만, 모두 가슴에는 '멋진 비행'의 추억이 남겨져 있을 것이다. 이렇게 화요예배와 남한산성의 자연 속에서 주님을, 그리고 형제자매를 만나는 경험은 온라인으로는 제대로 얻을 수 없는 실제 비행 체험이다. (그래서 우린 거리두기가 강화되었을 때 화요예배를 비대면으로 중계하지는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이 여행에 수련원을 섬기는 사람들은 모두 승무원들(cabin crew)일뿐이다. 우리 비행기를 안전하고도 능숙하게 조종함으로써 승객들에게 멋진 경험을 제공해주는 기장은 주님이시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다시 시작된 영락수련원 화요예배가 이렇게 두 번째 비행을 마쳤다. 방역지침을 따라 많은 좌석을 비워 놓지만, 지난 주도, 이번 주도 가슴은 벅차다. 오늘 비행을 마치고 다시 자신의 삶의 자리로 돌아간 분들이 변화된 마음으로 이 어려운 시기를 담대하게 살아가시길 기도한다. 멋진 '기장님'과 믿음직한 '동료 승무원들'과 반가운 '승객들'로 인해 감사한 화요일 저녁이다.

 

2020.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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