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자가 아닌 종으로
As Servants, Not As Conquerors
월드컵 열기가 한창 뜨겁던 지난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의 한 지방 도로에서 친구 생일 잔치에 가던 여중생 2명이 주한미군의 궤도차량에 치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치 마른 장작에 석유를 붓고 불을 붙인 것과 같이, 이 사건으로 인해 지난 동계올림픽 이후 전국민적으로 넓게 확산되어 있던 반미감정이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고 있다. 교통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나, 국민을 분노케 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며, 거만하고 불성실하게 조사에 임하는 주한미군의 태도이다. 이러한 비극과 미군의 책임회피는 비단 이번 일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미군이 발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발생되어 왔던 일이다.
명목상 주한미군은 한반도의 평화유지를 위해서 파견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음으로 인해 갖게 되는 전쟁억제력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여기에는 많은 모순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일일이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문제들의 핵심에 있는 가장 큰 원인을 이야기한다면, 바로 주한미군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섬기는 입장에서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복자로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미국이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정을 생각하기보다 실은 자국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우리나라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정복자가 아닌 섬기는 자가 더욱 필요한데도 말이다.
이러한 진리는 선교나, 사회봉사,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구소련의 한 크리스천 리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나라에 들어오는 크리스천 사역자들 중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복자로 들어오는 부류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려는 목적으로 이미 다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갖고 들어 옵니다. 많은 돈을 가져와서 바로 큰 사업 계획들을 시작하고 싶어하죠.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그들 자신이 속한 기관의 영광을 반영하는 큰 교회 건물, 큰 신학교들과 다른 건축물을 세우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느끼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야망만을 만족시키고 자신들의 개인적인 사역만을 일으키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종으로 들어오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배우러 옵니다. 우리를 알고 싶어하고, 우리가 정말로 어떤 사람들인지 보기를 원하죠. 그들은 우리의 고통 가운데 들어오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와 함께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무엇을 행하시고자 하는지 묻습니다. 우리는 이 두 번째 부류를 선호합니다.”*
이처럼 이 세상은 더 이상 정복자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종이 되어 섬기는 자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많은 선교지와 고아, 무의탁노인 등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많은 약한 자들은 정복자가 아닌 섬기는 종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자존심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밑에 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위에 있거나 최소한 동등한 입장에 있기를 원한다. 나 역시 그러하여 부끄럽게도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이다가도, 좀 마음에 안 들면 번번이 고개를 빳빳이 치켜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종은, 비록 상대방이 객관적으로 나보다 모든 조건이 열악하게 여겨진다 할 지라도 겸손히 그들의 밑으로 들어가서 섬기는 존재이다. 만약 그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비난하는 주한미군과 같은 존재가 될 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나는 주의 종입니다’라고 고백해왔다. 주님은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종인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지극히 작은 자들의 종이 되어 섬겨야 한다. 그것이 바로 썩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 한 알의 밀알의 삶이다.
*는 오대원, "두려움의 집에서 사랑의 집으로"(예수전도단), 57쪽에서 인용함
2002. 7. 11.
화평교회 청년부 주보 '이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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