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교회 4부예배 주보 목회칼럼
2003. 3. 23.
억울하지만
중학교 때의 일이다. 그날따라 나는 쉬는 시간에 교실 안을 매우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담임선생님께서 내게 어떤 일을 맡기셨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어떤 목적으로 급히 돈을 걷는 일이었다. 나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쉬는 시간, 짧은 10분 동안 쉬지도 못하고 교실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수업시작 종이 울리고 나서야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 수업은 학교에서도 악명(?) 높은 한 선생님의 수업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선생님이 들어오셨을 때 교탁 위에 누군가의 가방이 올려져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아주 불쾌한 얼굴로 가방의 주인을 찾았다. 그 가방은 매우 낯익었다. ‘아뿔사!’ 나는 몹시 당황했다. 분명히 내 책상 옆에 걸려있어야 하는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는 동안, 장난치는 아이들의 발길에 채여 교탁 위에까지 올라가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불려 나갔고, 선생님은 이유도 묻지 않고 나에게 몽둥이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대를 맞고 나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왔다. 아파서가 아니라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가 운다고 다시 또 나를 때렸다.
얼마 전 기도하다 갑자기 이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때 느꼈던 분노와 원망이 꿈틀거리며 터져나오는 것을 느꼈다. 벌써 15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그때 그 선생님과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 가방이 교탁 위에까지 올라가게 했던 친구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이글거리는 원망과 분노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게 사람들에게 조롱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아! 주님은 얼마나 억울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은 하나님으로서의 많은 특권을 포기하시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그분은 식사하실 틈도 없이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병든 자를 고쳐 주셨으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그들에게 먹을 것도 주셨다.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전 존재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전혀 그 고마움을 모르고, 떡을 받아 먹던 그 손으로 주님을 손가락질했으며, 호산나라고 외치던 그 입으로 주님을 조롱하고 저주하였다. 주님은 얼마나 억울하셨을까? ‘내가 저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주었는데…’라고 생각하시며,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을, 그리고 천사들을 동원한 혁명보다 고난의 십자가를 선택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셨을까? ……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의 하는 일을 알지 못 합니다”라고 자신을 배반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사람들을 전혀 원망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분노하시지도 않으시고, 오직 끝까지 자신을 사랑과 용서의 제물로 드리셨다. 예수님에 비하면 나는 억울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추악한 죄로 오히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했던 장본인이 아니던가?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감당치 못할 분노와 원망으로 몸부림칠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구보다도 억울하셨으면서도, 전혀 원망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던 주님을 생각하자. 그리고 주기도문의 한 구절로 이렇게 기도하자. “자비하신 주님! 주님께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저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게 해 주시옵소서. 비록 억울하고 원망스럽지만, 주님께서 저에게 대하여 그러하셨던 것처럼, 저도 사랑과 용서의 맘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해 주시옵소서.” 이것이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오늘 사순절을 살아가는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바람소리 > 목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대통합, 예배를 통해 이루자 (0) | 2003.05.11 |
---|---|
사랑 받는 사람, 사랑 주는 사람 (0) | 2003.02.23 |
Break Heart Healer (0) | 2003.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