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바람소리/목회칼럼 2004. 5. 29. 16:00

영등포교회 4부예배 주보 목회칼럼 
주후 2004년 5월 29일 

-준~!


학창시절 체육시간, 운동장에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기-준~!” 

이렇게 운동장에서 줄을 서기 위한 것 말고도, 우리 삶에는 많은 기준들이 있다.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도 규격이나, 함량에 대한 적당한 기준이 있고, 환경오염에 대해서도 기준이 되는 수치가 있다. 옷을 만드는 데에도 55-66, 또는 90, 100호 등의 기준이 있으며, 전기밭솥의 내부에도 쌀의 양에 따라 기준이 되는 물의 양이 눈금으로 그려져 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기준이 있는가 하면,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들도 있다. 어떤 일이나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그런 종류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더욱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확하고 바른 기준이 필요하다. 

  여러분의 인생의 성패기준은 무엇인가? 경제적인 것을 기준으로 삼아 얼마의 금액을 벌고, 어느 정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아실현을 기준으로 삶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 또는 업적 등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 또는 건강이나, 사람과의 관계 등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 이러한 다양한 것들이 사안별로 우리 인생의 기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인생의 가장 중심에 있는 핵심적인 기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훌륭한 신앙의 선배 사도 바울의 경우를 살펴보자. 빌립보서 1장 12-18절에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을 때,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더욱 열심히 전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이들은 갇힌 바울을 대신해 더욱 열심히 복음을 증거해야겠다는 ‘착한 뜻’으로 했지만, 어떤 이들은 감옥에 있는 바울을 괴롭게 하려는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거짓된 마음으로 하든지 참된 마음으로 하든지, 어떤 식으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한 기뻐할 것입니다.” (빌1:18) 

바울 사도가 자신은 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생의 성패기준이 ‘내가 어떤 일을 이룩하는가’에 있지 않고, ‘복음이 얼마나 진보하는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그는 철저히 복음을 위해서 산 사람이었다. ‘복음의 진보’를, ‘보다 많은 사람의 구원’을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성패의 기준이자 목표로 삼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조금도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서는 자신이 옥에 갇히고, 매맞고, 죽더라도 기뻐하고, 또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빌1:20-21)라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었다. 그는 죽음의 의미도, 삶의 의미도 바로 깨달은 사람이었다.

당신의 삶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이 바라고 또 기뻐하는 것은 무엇인가? 러시아를 정복하기 위해 눈 덮인 산을 오르던 나폴레옹이 많은 군사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쓰러져가던 때에서야 이 길이 아니었다고 말한 것처럼 늦기 전에, 깨닫고 바른 기준을 잡아야하지 않겠는가? 바른 길로 매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의 청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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