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단연 만남의 계절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겨우내 외로웠던”이라는 표현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봄은 새로운 만남에 대한 가슴 설레는 기대와 함께 우리 곁에 돌아옵니다. 그래서 봄에 맞는 이별은 더 가슴 아프고, 비극적이지요. 제 아버님은 화사한 사월에 잠깐 여행을 떠나듯 병원으로 걸어 들어가셨다가, 봄이 절정을 이루던 오월 어느 날, 돌풍에 떨어지는 꽃이 되어 사랑하는 이들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를 읽었을 때, 가여운 시인을 살짝 질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면도를 더 정성껏 해드려야지

손톱도 으깨어진 발톱도 깎아드리고

내가 누구냐고 자꾸 물어보아야지

TV도 켜드리고 드라마도 재미있게 보시라고

창밖에 잠깐 봄눈이 내린다고

새들이 집을 짓기 시작한다고

귀에 대고 더 큰 소리로 자꾸 말해야지


-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 1연.


      시의 화자는, 아마도 시인은, 봄눈이 내리는 어느 날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날은 부친과의 마지막 이별을 앞두고 있는 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수염과 손톱, 발톱을 깎아 드리며 정성껏 아버지를 돌보아 드립니다. 눈도 뜨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위해서 드라마도 틀어 드리고, 그리 중요할 것도 없는 창밖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도 합니다. 마치 아버님이 내일을 또 맞이하실 것처럼 아들은 아버지에게 변함없는 일상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과 행동의 불일치, 곧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라는 상황과 ‘일상의 지속’이라는 행동의 불일치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더욱 슬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Canon | Canon EOS 60D | Aperture priority | Pattern | 1/60sec | F/4.0 | 0.00 EV | 32.0mm | ISO-200 | Flash did not fire


      어쩌면 제가 아버지와 이런 마지막 날을 보낼 수 있었던 시인을 부러워했던 것처럼, 시인의 슬픔을 자신이나 어떤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비교해 가벼운 것으로 여길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이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슬픔의 크기, 또는 고통의 무게는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있거나,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살다가 보면 스스로 감당하기 버거운 각자의 슬픔과 고통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슬픔 속에 주저앉아 있지 않습니다. 2연에서는 “울지는 말아야지 / 아버지가 실눈을 떠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시면 / 활짝 웃어야지 / 어릴 때 아버지가 내 볼을 꼬집고 웃으셨듯이 / 아버지의 야윈 볼을 / 살짝 꼬집고 웃어야지”라고 말하며, 아버지를 편안하게 보내 드리기 위해 슬픔을 명랑함으로, 눈물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한 이런 사랑은 마지막 4연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텅 빈 아버지의 입속에 마지막으로

귤 향기가 가득 아버지의 일생을 채우도록

귤 한 조각 넣어드리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기 때문에 죽음이 아픈 것이라고 

굳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시인이 아버지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은 귤 한 조각입니다. 그는 상큼한 귤 향기로 아버지의 한 평생을 채우고자 합니다. 시인의 아버님이 어떠한 일생을 살았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입속에 넣어 드리는 귤 한 조각을 통해 우리는 그분이 귤 향기처럼 참 아름다운 삶을 사셨을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지금까지 흑백 영화와 같았던 시 속의 장면들이 귤빛 선명한 천연색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죽음으로 육체는 사라질 것이나, 귤 향기는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프지만, 그리고 그 헤어짐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슬프지만, 이렇게 귤 향기가 가득한 이별은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시인과 그의 부친이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될 때,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귤을 입에 넣어 주며 장난스럽게 볼을 꼬집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 글을 쓰며, 중환자실 병상 위에 누워 계시던 제 아버님을 기억 속으로 다시 모셔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신선한 귤을 까서 그분의 바짝 마른 입속에 한 조각 넣어 드립니다. 그리고 그때 미처 드리지 못한 말씀을 아버지의 귀에 다정하게 속삭입니다. “아버지의 일생은 귤 향기처럼 참 아름다우셨어요.”


Magazine Hub 47 (2017년 3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