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 검은 바다




바다는 변화무쌍한 모양뿐만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빛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보통 그림이나 글에서 바다는 푸른 색 계열로 묘사되지요. 그런데 특이하게도 푸른 바다와 검은 바다가 공존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사일런스〉의 원작자인 엔도오 슈우사꾸(遠藤周作)가 쓴 《바다와 독약》(1957)이라는 소설입니다. 


“의학부 서쪽으로 바다가 보였다. 옥상에 올라갈 때마다 스구로는 때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파랗게 빛나고 때로는 음울하게 검은 빛을 띠는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바다와 독약》(창비, 2014),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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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구로는 일본 큐우슈우 대학병원의 연구생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전공의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는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으로, 병원이 소재한 F시는 미군의 공습으로 동서남북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쟁 중에 큐우슈우 대학병원에서는 비밀스러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포로로 잡혀온 미군들의 생체를 해부하는 비인간적인 실험, 아니 살인이었습니다. 스구로는 이 실험에 참여하기로 설득당한 날 밤, 특이한 경험을 합니다.


“어둠 속에서 잠이 깨자 저 멀리 바다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바다는 검은빛으로 넘실거리며 밀려왔다가 다시 검은 너울을 일으키며 멀어져 가는 듯했다. …… 잠들었다가는 깨고 깼다가는 다시 깜빡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파편처럼 검은 바다에 휩쓸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82-83쪽)


소설에서 스구로는 악인이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의사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첫 환자였던 “아줌마”의 죽음 이후, “이제 오늘부터 전쟁도 일본도 자신도 모두가 될 대로 되라.”(79쪽)는 체념 속에서 살아가는 무력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는 생체 해부에 참여하라는 제의가 왔을 때, 그것이 의학적 실험으로 미화된 살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바다에 휩쓸려가듯이 아무런 저항 없이 세상 풍조에 자신을 그대로 내맡깁니다. 


그러므로 소설 속에서 검은 바다는 ‘체념’과 ‘양심의 마비’라는 독약에 병든 그의 내면세계를 상징합니다. 반대로 푸른 바다는 그가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순수한 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스구로는 바다가 파랗게 빛나는 날에는 어릴 때 배운 다음과 같은 시를 떠올립니다. 


양떼구름 지날 때

뭉게구름 피어오를 때마다

하늘아 네가 뿌리는 것은

하얀, 하이얀 솜 떼 (48쪽)


이처럼 이 소설에서 ‘바다’는 매우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래서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외부의 자연 세계가 인간의 내면세계를 투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곧, 푸른 바다는 하얀 구름처럼 순수한 마음을, 검은 바다는 갖가지 독약에 병든 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한 체념, 비양심, 탐욕과 같은 ‘독약’들이, 인간의 손을 통해서 실제로 자연 세계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매연과 폐수, 그리고 각종 난개발 등으로 인해 하늘과 강과 산은 갈수록 푸른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사월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우리를 찾아옵니다. 사월은 우리의 마음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분홍빛 벚꽃이 만개하고, 어린 나뭇잎들도 점점 푸르게 자라는 때입니다. 그것은 이처럼 푸르른 자연을 보며, 검은 바다 같은 우리의 마음을 해독하라는 신의 자상한 배려이자, 순결한 초대이지 않을까요?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봄꽃 여행을 떠날, 또는 산책을 나갈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Magazine Hub 48 (2017년 4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