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아,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 매일매일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가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떠올라 당혹스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변화’와 ‘혁신’이라는 말들이 시대의 열쇠말(keyword)처럼 유통되는 오늘, ‘내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살고 있구나!’라는 자각은, ‘내가 시대에 뒤쳐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자괴감이나 두려움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안정된 삶을 추구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꿉니다. 늘 똑같은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고, 뭔가 특별한 음식을 맛보기 위해 이른바 ‘맛집’을 찾아다닙니다. 또한, 평소 집과 학교와 일터처럼 늘 다니는 장소들을 오가는 생활이라 할지라도 오늘 하루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내심 바라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와는 반대의 삶을 꿈꾸는 시인이 있습니다.


내가 꿈꾸는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

바람은 달려가고

연인들은 헤어지고

빌딩은 자라난다

송아지는 태어나고

늙은 개는 숨을 거두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찻잔에 물이 잔잔하고

네 앞에 시 한 편이 완성되어 있을 때


- 이성미, 〈내가 꿈꾸는 것은〉 전문.


     이 시의 화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꿈꾼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변화가 두려워서일까요? 아니면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서일까요? 그러나 시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짧은 시의 1연은 변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람으로 상징되는 자연은 달려가듯 변하고, 무생물인 빌딩조차 매일매일 자라나서 주위의 세상은 빠르게 변해 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인 송아지가 태어나자, 수명을 다한 늙은 개, 곧 이전 세대는 숭고한 죽음을 맞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이 주어와 서술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들로 기록되어 있어 그 속도가 더 빠르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는 2연 첫 행에서 다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완료형으로 말합니다. 얼핏 보아도 모순적인 진술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마지막 두 행은 시인이 이러한 시적 모순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해줍니다. “찻잔에 물이 잔잔하고 / 네 앞에 시 한 편이 완성되어 있을 때”라는 시점은 앞선 1연과는 달리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때입니다. 마치 태풍의 눈과 같이 외적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찻잔 속의 물은 찻잎의 작은 입자들이 만들어 낸 미세한 움직임조차 사라지고 잔잔하게 멈춰 있습니다. 그리고 찻잎에서 우러나온 차 한 잔처럼 시인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시 한 편이 “네 앞에” 완성되어 놓여 있습니다. 이 때 ‘너’는 누구일까요? 1연에서 말한 헤어진 연인일까요? 아니면 우리 독자들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시인 자신일까요?


     어쨌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이라는 시인의 꿈은 한 편의 시의 완성과 더불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삶은 곧 시인이 시작(詩作)을 통해 이르게 되는 내면의 깊은 고요, 또는 그 속에 살아가는 삶인 것으로 보입니다. 외부 세계의 급격한 변화에도 요동하지 않는 깊은 평온함, 또는 변하지 않는 삶의 본질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처럼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내가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그것은 변화하는 시대에 뒤쳐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의 중심에, 또는 삶의 본질에 깊숙이 가 닿는 신비한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시인이 원고지 위에 단어들을 썼다가 지우는 과정을 반복하며 시 한 줄 한 줄을 써나가듯이, 우리도 ‘일상’이라는 시어를 ‘하루’라는 원고지에 날마다 정성껏 써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차 한 잔이 우러나와 우리 앞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 잔잔한 고요를 마시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내면의 중심에 이르지 못한다면 우리 삶에는 껍데기뿐인 변화 밖에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도 현란하고 피상적인 변화보다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꿈꿉니다. 비록 그런 삶은 급변하는 한국 사회, 특히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삶은 꿈꿀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짧은 글을 마무리합니다. 오늘 저는 여전히 어두운 새벽에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일어나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 해가 신비롭게 떴다가 장엄하게 지고, 지금 창밖엔 다시 어둠이 가득합니다. 아기는 다시 울고, 엄마는 또 젖을 먹입니다. 하루에도 똑같은 일들을 여러 번 반복하며, 아기는 그렇게 커갑니다. 엄마도 그렇게 엄마가 되어 갑니다. 오늘이 또 다른 오늘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검게 사라져 갑니다.


Magazine Hub 53 (2017년 9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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