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아래로

내려가는

비상



누구나 한 번쯤은 ‘나락에 떨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나락’(那落)은 불교에서 죄업을 지은 중생이 태어나는 심한 괴로움의 세계를 뜻하는 말인데, 사전에 의하면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비유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비슷하게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에도 하늘과 땅 아래에 죽음과 고통과 절망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곳을 ‘스올(Sheol)’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히브리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에 보면, 요나가 깊은 바닷속에 던져져 큰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는 어둠과 고통과 절망이 가득한 그곳을 “스올의 뱃속”으로 인식합니다. 


By Jesse Hodgson. http://cargocollective.com/JesseHodgson/Children-s-Animal-Illustrations


이처럼 죽음에 이르는 것과 같은 깊은 고통과 절망으로의 추락은 종교와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입니다. 미국의 수도자이자 작가인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도 〈줄곧 아래로〉(All the Way Down)라는 시에서 이런 어둠의 경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려갔다.

동굴 속으로

줄곧 아래로

바다의 바닥까지.

나는 더 밑으로 내려갔다.

요나와 고래보다도

아무도 나만큼

그렇게 아래로 가보지 않았다


- 토머스 머튼, 〈줄곧 아래로〉 1연.[각주:1]


이 작품은 “요나서 2장”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히브리 성서의 요나서 2장에는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의 뱃속에서 하나님에게 드린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요나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이 물고기에게 명령하여 마침내 그를 육지로 토해 내게 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머튼은 이러한 요나의 이야기를 가져와 시인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는 도구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바닷속의 요나와 고래보다도 더 밑으로, 바다의 바닥까지 가보았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2연에서는 땅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추정되는 남아프리카 킴벌리의 다이아몬드 광산의 동굴보다도 자신이 아래로 더 깊이 내려갔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악마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이 악마보다도 더 깊이 내려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3연에서는 사람들은 그가 영원히 사라져 지옥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그가 경험한 어둠이 깊었음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적 화자는 그렇게 깊은 곳에서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마도 물고기의 뱃속에서 간절히 기도했던 요나처럼, 그도 끝이 없는 어둠 속에서 깊은 기도에 자신을 내던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역설적으로 고통과 절망의 가장 밑바닥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4연에서 그는 자신이 “모든 믿음의 뿌리”를 보았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5연에서 다음과 같이 깨달음의 경험을 상징적으로 묘사합니다.


나는 그 방을 보았다

생명과 죽음이 만들어 지는 곳.

그리고 나는 알았다

전쟁의 비밀 요새를.

심지어 나는 자궁도 보았다

모든 것들이 나오는 곳.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멀리 내려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시적 화자는 지옥에 내려가는 것 같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역설적으로 존재의 근원에 접촉하는 경험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그만큼 멀리 내려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합니다. 곧, 바다의 바닥까지, 또는 악마보다도 더 밑으로 내려가는 괴롭고 절망스러운 추락이 오히려 모든 생명과 죽음의 근원에까지 닿게 되는 깨달음의 길이 된 것입니다. 참고로 머튼은 그의 편지에서 자신이 깊은 기도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을 “숨겨진 사랑의 근원”(Hidden Ground of Love)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에 따르면, 우리는 나락에 떨어지거나 스올에 내려가는 것과 같은 빠져나올 수 없는 듯 보이는 절망 속에서도 오히려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존재의 근원, 곧 바닥을 딛고 다시 상승하는 신비한 희망 말입니다. 이 시의 마지막인 6연에서 시적 화자는 이제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와서 밖으로 나옵니다. 히브리 선지자의 이야기에서 요나가 물고기의 뱃속에서 나와 다시 육지로 돌아간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고

내가 계속해서

지옥에 있다고

그들이 생각했을 때

나는 즉시 내 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서

나의 종을 울렸다.


흥미롭게도 6연은 첫 단어가 “그리고”에서 “그러나”로 바뀐 것 외에는 3연과 똑같습니다. 이 두 연은 노래의 후렴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이 시는 머튼이 로버트 윌리엄스(Robert L. Williams)라는 한 젊은 흑인 가수의 요청을 받고 1964년에 창작한 여덟 편의 “자유의 노래들”(Freedom Songs)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4년 뒤인 1968년, 이 노래는 그해 4월 암살당한 마틴 루터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를 추모하는 노래로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한 컨퍼런스(Liturgical Conference)에서 연주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시는 1960년대 당시, 극심한 인종차별에 억압받던 당시의 흑인들에게 주는 토머스 머튼의 희망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들(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아무리 그 어떤 무덤 속에” 당신을 가두려고 해도, “아무리 그 어떤 불의를 그들이 행한다고 해도”(4연) 당신이 아래로 깊이 내려가 존재의 근원에 가 닿게 될 때는 즉시 해방되어 자유의 종을 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메시지는 오늘날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과 절망에 갇혀 있는 모든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희망으로 울립니다.


Magazine Hub 52 (2017년 8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


  1. 이 시의 영어 원문과 번역문 전문은 nephesh.tistory.com/12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