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2004년 12월 11일
등에서 내려서 걸리기
월간묵상집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재미있는 글이 실려 일부를 소개한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러 어스름한 저녁에 나온 골목길에서 온 가족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예쁘장한 강아지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예쁜 얼굴에 고운 목소리 없다던가. 어린 아들의 손도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작은 입을 가졌지만 짖어대는 소리는 꽤나 앙칼졌다. 개는 우리 주변을 빙빙 돌며 있는 힘을 다해서 우리를 쳐다보고 짖고 또 짖었다. 두려움과 엄살이 조금 심한 딸아이는 그 때마다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다. 딸이 소리를 높이면 개도 덩달아 더 높은 음으로 짖었다. 딸이 엄마 뒤로 숨으면 개도 얼른 뒤로 돌아가고, 앞으로 오면 어느새 앞에 와서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빙글빙글 돌며 개를 피하고 있는 누나에게 어린 동생이 야무진 한 마디를 했다. “누나, 무서워하지 마 하나님이 도와주신대.” ‘엄마! 기도하면 안 무섭지’라고 능청을 떨며 누나에게 핀잔을 주듯이 말한다. 밤마다 잠들기 전에 불을 끈 깜깜한 방에서 아이들이 무섭다고 투정을 부리면 우리 부부는 늘 기도하면 안 무섭다, 기도하면 나쁜 꿈 안 꾼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가르쳤다. 어린 아들이 바로 그 말을 내뱉은 것이다. 개를 피하느라 이리저리 돌던 누나는 동생의 이 말에 화가 났나 보다. 누나가 ‘너야, 엄마 등에 업혀 있으니 안 무섭지!’라고 툭 내 뱉는다. 얼마나 우스운지. 엄마 등에 업혀서 쫑알거리는 동생의 정곡을 콕 찔렀다.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아들의 말이나, 엄마 등에 업혀 있으니 안 무섭지 않느냐는 딸의 대답이나 모두가 걸작이었다.
피할 곳에 있으면서 ‘하나님이 도와주시지’라고 말하는 아들의 능청은, 피할 곳 없이 무서운 딸에게는 조롱으로 들렸나 보다. 하긴 조그만 개가 아무리 뛰어도 닿지 않는 곳, 엄마 등에 업힌 아들이 뭐가 무서우랴. 작은 개를 만나 반응하는 두 자녀로 인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너는 어려움을 겪는 이들 속에 살면서, 그들을 무섭게 하는 세상을 무서워 말라고 권면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안전한 피할 곳에서 두려워하는 친구들에게 ‘기도하면 안 무섭지’라고 말하는 사람이냐?
- 엄마 등에 업혀 있으니 안 무섭지(김병년) : ‘시냇가의 심은 나무’(IVP) 2004년 12월호 25쪽에서
가끔 어린 조카들과 함께 다니다보면 아이들은 아무래도 직접 걷는 것보다 업히거나 안기는 것을 좋아한다. 달래고 구슬려서 내려놓아도 조금 걷다가 다리가 아프거나 높은 계단이 나오면 안아달라고 팔을 벌린다. 하지만 그래서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 아주 어린 때에야 안아달라고 하지 않아도 번쩍 들어서 안고 가지만, 조금 크면 아이를 안아주는 것 대신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조심해서 계단을 오르내린다. 그래야 아이가 걸음을 배울 수 있다. 언제까지 안겨서, 업혀서 다닐 수는 없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연약할 때에는 우리를 등에 업으시고,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신다. 그러다가 우리의 신앙이 좀 커갈 때에는 슬며시 우리를 등에서 내려 놓고 걷게 하신다. 우리의 입장에서야 계속해서 하나님 등에 업혀있고만 싶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속 업고만 계시다면, 우리의 믿음은 항상 제자리일 것이다.
그러나 땅에 내려 직접 걸음으로써, 그리고 위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과 같은 위험을 직접 직면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하신다. 등에 업혀서 하는 기도보다 직접 땅에서 위험을 직면하고 하는 기도가 더욱 절박하고, 큰 믿음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해 많은 개들이 달려드는 바닥에 우리를 내려놓으신다. 이처럼 직접 어려움을 겪은 이들이야 말로 다른 이들에게 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바닥에 내려 놓으신 그 순간에도, 사방에 사나운 개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드는 그 곳에서도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시고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