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초대교회는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분없이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는 공동체이다.


성령의 역사 가운데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겼다. 그러나 중세를 지나면서, 교권이 강조되고  평신도는 교회의 바깥뜰로 밀려나 버리고 말았다. 이로부터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 종교개혁이었다. 마틴 루터는 '만인제사장설'을 통해 다시 평신도들의 손에 성경을 들려주고, 그들을 하나님의 사역자로 세웠다. 이런 맥락에서 사랑의 교회를 중심으로 '평신도를 깨운다'는 모토로 시작된 '제자훈련'과 최근의 'Cell 교회 운동' 또는 'NCD'운동은 교회에서 평신도 사역자의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일깨우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사역자의 질적 기준을 낮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나 사역자라는 명찰을 달고 교회 안팎을 활보할 수는 있을 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참다운 평신도 사역자는 다음과 같은 모습이 요구된다.


 1. 활동(doing)하기보다 존재(Being)하는 사람


사역자는 어떤 행위(doing)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는 가르치는 것, 찬양대는 연주하는 것 등 행위가 사역의 거의 전부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사역자는 행위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난다고 말씀하셨다.(마7:17)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먼저 행위에다 전력을 쏟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좋은 나무로 존재하기를 열망하고 애써야 한다. 이를 위해 주님 안에 거하는 예배, 묵상, 기도는 행위보다 훨씬 중요하다. 사역의 열매는 이 예배, 묵상, 기도에 달려 있다. 우리가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 안에 거할 때에 좋은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힌다.(요15)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구원받은 자녀로, 예배자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열매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이다.


 2. 혼자하기 보다 함께 하는 사람.


많은 경우 교회의 사역이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각 개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함께 하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는 좋은 능력과 재능,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할 때는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하나가 되지 못해서 제대로 사역이 진행되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마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격이다. 하지만, 성경은 모사가 많으면 일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잠15:22)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팀으로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워 나갈 때 그곳에 풍성한 열매가 맺힌다. 새들백 커뮤니티 교회의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는 팀으로 함께 하기 위한 4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영어로 T/E/A/M의 머릿글자이다. Trust(신뢰), Empathy(공감), Accommodation(배려), Mission(목적)이다.


 3. 이분법을 넘어선 통전적인(Holistic) 사고


교회 사역과 자신의 가정, 직장, 학교 등의 일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눅9:62)"고 말씀하셨지만, 동시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악한 자니라(딤전 5:8)"고 경고하셨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정답이겠는가? 이러한 딜레마에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교회일과 자기 개인의 일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살아서 하는 모든 행위는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일이 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일도 주님을 위해서 해야한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교회의 사역들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다. 성과 속을 이원론적으로 가르는 사고는 우리의 사역을 불구로 만들고 있다. 이원론을 넘어서 통전적인 사고만이 이러한 딜레마를 넘어서서 우리의 헌신과 섬김을 온전하게 할 수 있다. 이런 사고는 또한 우리의 섬김의 영역을 교회의 울타리 안에 가둬두지 않고,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세계로 확장시킬 것이다.


 4. 발을 씻기는 사람


많은 사람들은 사역의 직분을 자신의 명예와 자랑으로 여긴다. 실제적으로는 어떤 사역을 하지 않으면서도 교회에서 어떤 타이틀을 가지려고 한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존경받는 명예직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주님의 본을 따라 다른 이들의 발을 씻기는 실제적인 종이다.(요13) 다른 사람의 발밑에 서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발아래에 두는 격이다.


 5. 지식을 겸비한 열정을 가진 사람.


어떤 이들은 교회 일을 하면 자신의 열정을 강조한다. 그러나 지식이 없는 열정은 종종 일을 그르칠 때가 많다. 지식 없는 열정보다는 열정 없는 지식이 더 낫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지식을 겸비한 열정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 자라가야 한다.(벧후3:18)


2007년 6월 7일

'바람소리 > 목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닥'의 시대를 준비하자 (1)  (0) 2014.12.15
공동체를 세우자!  (0) 2007.04.01
참회일기를 쓰자!  (0) 2007.03.04

대연교회 청년부 4월을 여는 글

씨앗지 2007년 4월 1일


공동체를 세우자! 선한 영향력을 흘리자!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캠페인을 시작하며 -

 

3월, 새 학기를 맞아 아내가 많이 바빠졌습니다. 아내는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중학생들 중 가장 별난(?) 아이들이 2학년 남학생들입니다. 근데 올해는 그 중2 남학생반의 담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정말 많이 바빠졌습니다. 아이들이 만든 환경미화가 삐뚤빼뚤해서, 집에 들고와 밤늦게까지 보완하기도 하고, 거의 매일 아이들이 깬 유리, 망가뜨린 사물함, 부서진 액자 등 뒤처리를 하느라 제 시간에 퇴근하는 날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들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는데요, 그것은 아이들이 터뜨린 사고(?)를 수습하는 것입니다. 서로 싸우는 것은 물론, 어떤 아이들은 폭행과 음주와 흡연등을 하기도 합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에 갓 올라왔는데도 말이지요. 그런데 그 아이들을 ‘참 나쁜 아이들’, ‘불량청소년’이라고 낙인찍고 그렇게 다루기에는 마음이 너무 아픈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아이들은 하나 같이 깨어진 가정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지는 여러가지 가정적인 어려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환경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그 아이들이 그렇게 비뚤어지는 것은 비뚤어진 가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거의 매일 이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 통에, 아내의 고민이 제 고민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위해 기도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십니다. 세상의 가정이 깨어져가는 것은, 교회가 깨어져 가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세상의 소망과 본이 되어야 할 교회가 깨어지고, 암세포와 같은 죄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그 부정한 영향력이 가정과 지역으로 흘러갑니다. 비통함과 미안함이 솟구쳐 오릅니다. 세상의 많은 가정이 깨어지고, 그 가정의 아이들이 비뚤어지는 것은 바로 교회의 죄악이고, 나의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4월부터 두 달간 우리는 <공동체는 세우는 40일 캠페인>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대연교회 청년부 하나 만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청년부의 수가 많아지고 분위기가 좋아지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욕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공동체를 세움으로 말미암아, 우리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는 여러 가정들, 현재 우리의 가정들,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들이 결혼하여 이룰 가정들을 온전하게 사랑과 하나님의 계획 위에 세우기 위함입니다. 나아가서 지역사회에, 이 세상에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통일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소수의 뛰어난 사람, 열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시다. 우리 공동체의 주변에서 온전히 공동체에 속하고 있지 못한, 지체들도 이번 캠페인을 통해서 울타리를 넘어 우리의 소중한 가족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합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씨앗공동체의 모든 형제, 자매들을 초대합니다.


'바람소리 > 목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런 사역자가 되자  (0) 2007.06.07
참회일기를 쓰자!  (0) 2007.03.04
태국 단기선교를 다녀와서  (0) 2007.02.11

대연교회 청년부 소식지

2007년 3월 4일 


참회일기를 쓰자!



윤동주 시인을 아는가? 그는 일제의 횡포로 암울했던 1917년에 태어나, 광복 직전인 1945년 2월에 29세의 나이로 일제의 감옥에서 옥사한 청년시인이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민족시인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였다. 윤동주는 16살 때에 캐나다 선교사가 운영하던 미션스쿨 은진중학교에서 공부하였고, 19살이 되던 해에는 만주의 용정 중앙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가 ‘독립운동’의 죄목으로 일본에서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는 신약성경을 열심히 탐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윤동주를 기억하고, 존경하는 것은 그의 이러한 이력들 때문이 아니라, 그는 혹독하고 악한 일제시대에 누구보다도 순결한 삶을 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의 <서시> 중)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한 점의 부끄럼도 없이 살아가기를 원했고, 그래서 작은 허물에도 크게 괴로워했던 순결한 마음을 가진 형제였다. 이러한 윤동주의 순결의식은 그로 하여금 날마다 자기 자신을 성찰하며, 참회의 글을 쓰게 하였다. 그가 만24세 때에 쓴 <참회록>이라는 시에는 이런 글이 있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겨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윤동주의 <참회록> 중)


이처럼 윤동주는 일제시대인 1930,40년대에 청년기를 보내면서, 암울한 그 시대 속에서 순결한 기독청년으로 살고자 참회의 글을 썼던 사람이다. 우리는 그로부터 60-70여년이 지난 2000년을 전후해서 청년기를 살고 있다. 비록 윤동주와 우리는 각각 다른 시대를 살고 있지만, 우리 또한 오늘날의 혼란스럽고 타락한 시대 속에서 순결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띠고 있다. 그저 좁은 대학의 문과 취업의 문을 통과하여, 생활의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우리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꽃피게 할 사명을 띠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한 사람,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이를 위해 오늘 우리에게도 참회의 글을 쓸 것이 요구된다.


지금은 사순절(Lent) 기간이다. 사순절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기간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참회의 일기를 쓰자. 밤이면 밤마다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그날의 죄를 고백하는 일기를 쓰자. 우리 마음에 낀 죄의 녹을 닦아내자.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성 금요일(4월 6일)에는 우리가 함께 모여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우리 개인의 죄와 공동체의 죄를 회개하자.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시대에 빛이 되는 순결한 기독청년이 되도록,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깨끗한 성령의 샘이 되는 공동체가 되도록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자.


'바람소리 > 목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동체를 세우자!  (0) 2007.04.01
태국 단기선교를 다녀와서  (0) 2007.02.11
나무가 숲을 이루어  (0) 2007.01.14

대연교회 청년부 2월을 여는 글

청년부 소식지, 2007년 2월 11일 

 

교회를 교회 되게, 예배를 예배 되게


“만일 태국에 한국교회가 복음을 전했다면, 태국의 교회는 지금처럼 약하지 않을 것입니다” 태국 단기선교 때에 선교센터의 이사장이신 쁘라차이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태국은 약 170여 년  전에 독일의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이 전해진 나라이다. 우리나라보다 약40년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 국가이다. 그러나 지금 태국의 기독교는 전체 인구의 1% 정도 밖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아주 미약한 상태이다. 이에 대해 여러 사람들은 그 원인 중 한 가지를 태국에 복음을 전한 독일교회에서 찾는다. 그것은 독일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날 정도로 한 때 기독교가 왕성했고, 또 국교(國敎)도 기독교인 나라이지만, 사실 오늘날의 독일교회는 아주 쇠퇴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국 교회의 어머니교회가 되는 독일교회의 쇠퇴로 태국의 기독교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인 원인들이 있지만, 선교지와 그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은 결코 간과할 수가 없다.


두 주간 태국 땅을 밟고, 태국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욱 절실히 느낀 것은 우리 민족이 함께 예배하는 한국교회의 중요성이다. 한국교회는 복음을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기부터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현재 선교사를 파송한지 약 1백년이 되었으며, 전 세계 각지로 1만 6천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세계 두 번째의 선교사 파송국이 되었다. 우리 한국교회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숫자적으로 세계2위라서가 아니라, 그 만큼 많은 전 세계의 영혼들, 그리고 선교지의 교회들이 우리 한국교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곧 한국교회가 부흥하면 그 영향력이 선교지의 여러 교회들에게로 흘러가서 선교지에서 부흥이 일어날 것이고, 반대로 한국교회가 쇠퇴하면 선교지에서의 복음의 진보도 힘겨울 것이다. 그뿐 만이 아니라 아직도 세상에는 추수할 곡식이 많고, 이를 추수할 수많은 일꾼들이 필요한데, 우리 한국교회 안에는 이런 잠재적인 선교사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에 부흥이 일어나면 그 잠재적인 선교사들이 비전을 발견하고, 훈련받아 선교지로 나가게 되겠지만, 만약 한국교회가 쇠퇴하게 된다면 선교사가 줄어들게 되고 그 만큼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교회의 회복과 부흥은 곧 세계선교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 완성을 앞당기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이러한 부흥과 쇠퇴의 기로에 서 있다. 평양대부흥의 100주년이자, 우리교회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07년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 부흥에 대한 갈망과 기대가 높아져 있지만, 실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부흥을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서의 선교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중요한 사명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부흥이 우리 교회 가운데, 부산에, 이 민족에 임하도록 기도하고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다. 최근 우리의 가슴을 지피고 있는 찬양처럼 “교회를 교회 되게, 예배를 예배 되게, 우릴 사용하소서”라고 고백하며 내가 먼저 주님께 철저히 복종하며 헌신하는 우리 씨앗공동체가 되자.



'바람소리 > 목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회일기를 쓰자!  (0) 2007.03.04
나무가 숲을 이루어  (0) 2007.01.14
물꼬를 터라  (0) 2006.12.03

대연교회 청년부 <씨앗>소식지

2007년 1월 14일


나무가 숲을 이루어


기도하며 준비하고, 기다리던 2007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올 한 해 하나님께서 우리공동체 가운데 행하실 일을 기대하며, 우리공동체의 나아갈 방향을 그림으로 그려보았습니다.

 

1. 토양 : 우리의 가장 중요한 토양은 바로, 예배와 묵상입니다. 함께 드리는 예배와 우리의 삶 가운데 날마다 갖는 경건의 시간은 우리 공동체가 성장하여 숲을 이루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토양입니다.

 

2. 나무 : 올 한 해 우리는 네 개의 나무를 중점적으로 키워나갑니다.


 기도의 나무 :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는 것이자, 부흥을 위한 본질적인 전략입니다. 이 기도의 나무에는 매주의 <토요기도회>,<예배를 위한 기도회>, 그리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기도하는 <디아스포라 기도모임>, 5월27일 해운대 백사장에서 있을 부산경남지역 청년들의 기도모임인 <Again 1907>, 그리고 중요한 시기마다 있을 특별기도회(체인)이라는 가지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올해 <기도사역팀>이 신설되었습니다.


 공동체의 나무 : 공동체는 올 한 해 우리가 정말 많은 사랑과 관심으로 키워야할 나무입니다. 공동체의 성장은 우리 개인의 성장은 물론, 선교와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공동체 안의 무너진 영역을 다시 세우고, 상한 부분을 치유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가지들을 자라게 할 것입니다. <온라인 공동체-청년부 홈페이지 활성화>, 2/4분기에 실시될 공동체40일 캠페인 <Better Together>, 공동체를 떠난 이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Login Project>, 깨어진 관계의 <치유, 회복>, 가족별·또래별 <요리대회, 체육대회, 등반대회> 등이 있습니다.


③ 사명의 나무 : 주님의 지상명령, 전도와 선교의 나무도 우리가 키워야할 중요한 나무입니다. 태국북부지역에 거룩한 강이 흐르게 할 <태국단기선교-거룩한 강>, 7월 31일-8월 1일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릴 <07 통영선교>, 우리 씨앗공동체의 본질적인 사명 <캠퍼스선교>, 10월 18-21일의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 그리고 11월 11일 전교회적으로 실시될 <1111전도주일>, 그리고 매주의 <전도팀> 등의 가지가 있습니다.


④ 양육의 나무 :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의의 나무로 자라가는 것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나무 입니다. 이를 위한 가지는 이번 주부터 있을 겨울수련회 <PUSAN KOSTA KOREA>, 2월 5-6일 <JUMP 2007>, 그리고 더불어 함께 하나님께로 자라나가는 <가족모임>과, 리더십 양육을 위한<3th JDTS>, 11월 말의 <07 말씀과 청년> 등이 있습니다.

 

3. 숲 : 공동체적으로는 이러한 4가지의 나무를 중점적으로 키워갈 것이며, 그러할 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이 심으신 ❛의의 나무❜로 자라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일 때 <하나님 나라>라는 푸른 숲이 우리 공동체와 우리들의 삶 가운데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올 한 해 우리 모든 ❛씨앗들❜의 헌신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 비전을 사십시오. 이 비전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씨앗공동체의 <공동구매> 참여 하신다면, 공짜로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기도의 마우스로 지금 클릭하십시오!


'바람소리 > 목회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국 단기선교를 다녀와서  (0) 2007.02.11
물꼬를 터라  (0) 2006.12.03
Re4  (0) 2006.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