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16. 주일


어제 오늘은 너무 바빴다. 교회 식구들 몇 명이랑 같이 야외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실제적으로 준비할 사람이 몇 명 없다보니 대부분의 일을 우리 가정에서 해야 했다. 어제는 저녁 늦게까지 장보기와 음식 준비를 하고, 오늘은 바베큐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다보니 밖이 새까매져서야 텃밭에 나갈 수 있었다.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물주는 것을 하루쯤 건너뛸까 생각하다가도 "우리 아그들 물주러 가야지"라는 아내의 말에 이상하게도 애정이 느껴져서 어두운 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과는 달리 도시의 밤은 그리 어둡지 않아서 우리 밭의 위치와 수도꼭지를 찾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우리에게 텃밭을 넘겨주신 분께서 밭에 물을 매일 줘야 하는데, 해가 진 저녁에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알려주셨다. 낮에 주게 되면 물방울이 돋보기 역할을 해서  작물이 햇볕에 상하거나, 물이 땅에 깊이 스며들지 않고 빨리 증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호수를 끌어다가 꼭지를 돌리니 쏴아 하고 세찬 물줄기가 어둠을 가른다. 호박, 콩, 깻잎, 해바라기, 옥수수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물을 들이마시는 것 같다. 며칠 전까지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그 존재도 몰랐던 작물들이 "아그들"이라는 말에 정말 내 아이들이 된 것 같이 정이 간다. 어둠 속에서 물을 맞는 아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더욱 흐뭇하다. 내가 수고한 것이라고는 고작 며칠 물 준 것 밖에 없는 이 작은 텃밭에 느껴지는 애정도 이런데, 일 년 내내 새벽 일찍 일어나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농작물에 느끼는 애정이란 얼마나 클까? 그리고 가뭄이나 태풍 등의 자연재해로 그것들을 잃는 아픔은 또 얼마나 쓰라릴까? 


밭에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으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고마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에게 끼니때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흐뭇하실까를 생각하며, '저도 그 마음 조금 알아요'라고 아는체를 했다. 하나님이랑 이전보다도 마음이 더 통하는 것 같다. 


오늘도 어제처럼 저녁 늦게 밭에 나갔다. 텃밭 뒤에 난 철로를 따라 기차가 경적을 시끄럽게 울리며 지나간다. 식물들이 시끄러운 소리에 잠깐 잠을 설치는듯 하더니, 기차가 지나가자 밭은 다시 고요 속에 빠져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