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 월.


인디언 서머로 유난히 더웠던 오늘 평소 가깝게 지내는 두 가정이 우리집으로 '피서'를 왔다. (내가 사는 동네는 만과 바로 인접해 있어서 여름에도 항상 날씨가 선선한 편이다. 작년 여름 한국에서 오셔서 머물다 가신 아버지께서 감기에 걸리셨을 정도다.) 함께 저녁을 먹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다들 산책을 겸하여 텃밭 구경을 나섰다. 


나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 빨리 나와서 집주변에 흩어진 담배꽁초들을 부지런히 주웠다. 왕성한 식욕으로 콩잎을 먹어치우고 있는 달팽이들을 퇴치하기 위해서이다. 처음 밭을 인수 받았을 때도 조금 그러긴 했지만, 요즘은 성한 콩잎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심한 것들은 거의 다 헤어진 걸레 수준이다. 며칠 전 콩잎들을 뒤지다가 아주 조그만 민달팽이들과 소라 껍질 같은 것을 등에 지고 있는 제법 큰 녀석을 여러 마리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린시절 동화책에서 보던 귀여운 달팽이가 아니다. 녀석들은 이제 우리 아이들을 갉아 먹어 병들게 하는 징그러운 침입자들이다. 야행성인 달팽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숨어 있는 것들이 수십배 더 많다고 하니 제법 심각한 문제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아내가 인터넷을 뒤져보니 달팽이가 좋아하는 맥주에 담뱃재를 적당히 뿌려 놓으면 달팽이들이 맥주에 꼬여서 왔다가 니코틴으로 인해 죽는다고 한다. 담배가 참 해롭긴 한가 보다. 달팽이들에게는 좀 잔인한 방법이지만 달팽이들에게 시달려 죽어가는 콩들과 갓심은 상추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사실 며칠 전 죽은 해바라기들도 달팽이들의 소행이 아닌지 의심이 된다. 이전에 찍어 놓은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해바라기 잎도 갉아먹힌 흔적이 있었다. 달팽이들이 그건 자기들이 한 짓이 아니라고 억울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콩 사건에 대해서는 현장범이다. 사실 이렇게 달팽이를 잡아야하는 이유를 주저리 주저리 쓴 것은 '생계형 범죄자'인 달팽이들을 죽여야하는 나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낮에 아내가 장보러 갔다가 맥주를 사왔다. 조그만 텃밭을 가꾸는 데에 소소한 지출이 계속된다. 담배꽁초를 모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시민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UCB의 학생들이나 방문학자들의 가족들이 사는 이곳도 그렇다. 텃밭에 가서 내가 일종의 '달팽이 덫'을 설치하고 아내가 물을 뿌리는 동안 함께 간 분들은 콩도 따고, 아이들은 장난도 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인디언 서머라 날씨는 다시 한 여름 같이 더웠지만 해는 10월답게 빨리 떨어졌다. 제법 어두워진 후에야 텃밭을 나왔다. 아이들은 손전등만 있어도 까르르 웃으며 재미있게 논다. 나 역시 이웃들에게 약간의 농작물을 나눠주고 격려도 들어서 마음이 뿌듯했다. 내일 아침 즐거운 '달팽이 수확'을 하게 되리라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