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받는 사람, 사랑 주는 사람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 찬양이 처음 나왔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 가사에, 그 선율에 매료되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부르고 또 불렀고, 많은 지체들이 이 찬양을 통해 축복을 받으며 주루룩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외모나, 학력, 능력 등으로 평가받는 세상 속에서, 늘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인식의 전환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연민과 상처를 떨쳐버리고, 주님의 사랑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리가 지난 겨울수련회와 예배 때 이상호 목사님을 통하여 계속해서 들었던 말씀이 바로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이 감격스러운 말씀이 아니었던가?


나는 분명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명성이나 훌륭한 행동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며, 그분은 우리를 직접 지으신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행동이나 업적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존재 자체로 인하여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려고 자신을 혹사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주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어떤 일을 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강박관념은 전혀 가질 필요가 없다. 또한 그 사랑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과 경쟁할 필요도 전혀 없다. 다만 그분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그 사랑을 누리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인식에서만 그치게 된다면, 우리는 아주 이기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내가 사랑을 받는 자라면, 동시에 다른 사람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깨달음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 역시 아무런 조건 없이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나에게 상처를 주고 짜증나게 하는 그들을 판단하고 미워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원래 그래!’라고 생각하며 아예 나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격하시켜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각이 다르시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한일서 4:12)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우리가 다른 사람 역시 사랑 받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서로서로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흘리는 통로가 될 때,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지체에게 흘러가고 그리고 지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흘러 들어온다. 하나님은 이 방법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사랑을 온전히 이루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공동체 안의 사랑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해진다. 지난 주에 쓴 글처럼 우리 공동체가 치유공동체로 세워지는 것도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로 자신을 열 때 가능하다. 상상해보라.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사랑의 통로가 되어 우리 안에,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장면을... 정말 가슴 벅차지 않는가?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 교회의 벽을 뛰어 넘어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찬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에다 이 찬양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가 그 후편(?)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이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 모두가 주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우리 청년1부 공동체와 또 각자의 삶의 자리에 심으신 것은 바로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임을 명심하자. 그러할 때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아름다운 또 하나의 열매를 맺어 가실 것이다.


2003. 2. 23

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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