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29. 월


약 한 달 전이었나 보다. 토마토 하나가 빠알갛게 익어가고 있어서 딸까 말까 망설이다가 좀더 익도록 그대로 놓아 두었는데 다음날 아침 밭에 나가보니 밤사이에 열매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마치 흙장난을 하는 아이의 얼굴에 흙이 묻은 것 마냥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때 이후로 토마토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열매를 꾸준히 선물해오고 있다. 


그러나 사실 한 달 전만 해도 토마토가 이렇게까지 열매를 계속 맺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푸른 색의 크고 작은 알맹이들이 십여 개 달려 있기는 했지만, 잎은 갈수록 말라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렇게 변해가다가 결국에는 완전히 말라버리는 잎들을 보면서 아내와 나는 물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였다. 그래서 매번 다른 작물들보다도 물을 더 흠뻑 주었다. 우리는 이것 말고는 토마토를 살릴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말라가면서도 날마다 열매를 키우고 있는 토마토를 보면 정말 안스럽고 가슴이 뭉클하였다.


다행히 새로운 가지들이 뻗어나오고 푸른 빛의 싱싱한 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꽃도 피웠다. 아내와 나는 새롭게 자라는 가지와 잎들을 보면서 토마토가 회복될 수 있으리라는 새로운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로난 잎들에도 누런 반점들이 생기고 끝부분이 말라가는 것이 보였다. 안타까웠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그저 완전히 마른 잎들을 몇 개 떼어 줄 뿐이었다. 손을 갖다대고 약간만 힘을 주어도 가지째 툭툭 떨어졌다. 우리의 희망도 그렇게 툭툭 떨어져 나갔다.


그러다가 며칠 전 '그제서야' 토마토가 물이 부족해서 마른 것이 아니라 병이 들어서 시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둔해도 '너~무' 둔하다! 인터넷을 통해 여러 종류의 토마토 병을 알아보니,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이 '점무늬병'에 걸린 것이 확실하다. 주로 발병하는 온도도 최근의 날씨와 일치하고, 습도가 많은 곳에서 발생한다는 점도 심증을 더해 주었다. 사진으로 본 증상도 거의 비슷해 보였다. 잎에 생기는 반점은 일종의 곰팡이인데 전염이 되기 때문에 병에 걸린 가지와 잎들은 가능한 빨리 제거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괜히 물을 많이 주고 병에 걸린 잎들을 방치해 두어서 병을 더 키운 것 같다. 순식간에 토마토에 대한 안스러운 마음이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경험없는 주인이 병을 키웠지만, 아이들은 원망 없이 날마다 최선을 다하여 열매를 키워냈다.


오늘은 날을 잡아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아내가 가위를 들고 집도하였다. 토마토의 병든 잎과 가지들을 모두 잘라내었다. 나는 주위의 잡초도 뽑아내고 흙도 좀 보충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남은 가지와 잎이 거의 없다. 과연 이 아이들이 다시 살아 날 수 있을까? 


토마토의 부상 투혼은 요즘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공부를 게을리하고 있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내가 맺어야 할 열매들을 거의 키우지도 못했는데 벌써 시월 한 달이 저물어 간다. 이번 가을 제출해야 할 원고 마감일들이 다가온다. 오늘은 토마토를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 먹었다. 병든 중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토마토의 성실함도 내 마음에 흡수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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