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북카페(Joy Book Cafe)에서 주최하는 <즐거운 독서(Joyful Reading)> 2014년 3월 22일 모임을 위한 책소개와 토론 질문입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pdf파일을 내려 받아 사용하셔도 됩니다.   즐거운 독서(2014-3)-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pdf



눈물을 반짝이게 하는

빛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일기》 

은수연 지음, 이매진(2012).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책 제목이 시적이고 낭만적입니다. ‘은수연’이라는 지은이의 이름도 참 예쁘고요. 하얀색 표지에다가 분홍색 글씨가 들어간 깔끔한 책 디자인도 감성이 풍부한 어떤 소녀의 일기장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지은이는 프롤로그에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이 책을 집어든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일단 이곳부터 읽어본 뒤 마음의 준비가 되면 계속 읽어나가기를 바란다. …… 이 책은 보기만 해도 힘든 오지 탐험 다큐멘터리 같을 수 있다.”(10,14쪽) 그렇습니다. 첫인상과 달리 이 책에는 가볍게 읽어 내려가기 힘든 내용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일기”라는 부제처럼, 이 책에는 ‘아빠’라는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해 온 한 여인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당한 무섭고 변태적인 성폭행 장면은 물론, 그와 함께 따라온 가혹한 신체적, 언어적 폭행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저자는 폭력적인 장면을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했을까요? 세상에는 행복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들도 많은데, 굳이 우리가 이런 글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신 분은 아마도 ‘그렇다’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지를, 최소한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말씀드리기 위해 먼저 저자와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수연은 평범한 삶을 꿈꾸는 “서울에 많고 많은 혼자 사는 30대 여성 중의 하나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평범한 삶, 소박한 삶을 꿈꾸는 것은 그만큼 지나온 삶이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녀의 삶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보다도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수연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9년 동안 아빠에게 성폭력을 당해 왔습니다. 아빠는 자녀를 위험 가운데서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오히려 딸에게 성폭행을 가하기 시작한 날 밤, 수연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속에 가진 모든 밝은 빛을 잃고 블랙홀에 빠지는 경험을 합니다(70). 그리고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초경을 시작하기도 전에 임신을 하고 낙태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아빠에게 “제발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말아줘, 너무 아파.”라며 울며 간청했지만(87), ‘그 사람’의 폭행은 더욱 심해지고 엽기적이 되었으며, 학교에 다녀오는 것 외에는 수연을 늘 집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나마 학교에 있을 때가 그 사람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수연은 친구들과 잘 지낼 수도 없었고, 갈수록 말을 잃어 갔습니다. 물론 수연에게 다른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와 다른 형제들은 아빠의 무서운 폭행과 협박으로 인해서 수연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관자’ 때로는 그 사람의 ‘협조자’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수연은 “그때 우리 가족들은 모두 어디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집에 존재하던 사람은 늘 나와 그 사람뿐인 것 같다.”(167)고 회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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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수연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라는 프롤로그의 제목처럼, 대학 1학년 여름 드디어 수연은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그녀는 아빠라는 사람과 감옥과 같은 집으로부터 탈출을 하게 되었고, 그 사람은 실형을 선고받고 7년 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1장에서 4장까지는 이런 탈출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수연의 몸은 탈출했지만, 그녀의 마음과 기억은 여전히 두려움과 상처와 고통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면 행복해 질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런 기억들은 “기다란 칼이나 화살처럼” 그녀의 가슴에 박혀서 예측하지 못한 때에 수연을 아프게 찔렀습니다.”(73) 심지어 탈출한 지 약 15년 후에 우연히 그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자신 앞을 지나가는 것을 목격한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연은 그 순간 ‘겁’이 자신을 집어 삼켜 버려서 “나는 없고, ‘겁’만 존재했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몸’은 머리와 마음보다 더 예민하게 두려움을 감각했다고 기록합니다(130). 그래서 수연은 이렇게 소리 치고 있습니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있나요?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힘들어서 망설여지는 제 어릴 적 이야기들 해도 되나요? 어디다 맘 놓고 이야기한 적도 없고, 제 속에 앉아 있는 이 기억들 좀 데려가주세요. 당신은 듣고 욕해주고, 거기 당신은 희망을 갖고, 그리고 당신은 기도해주세요. 지금까지 망설이고 있었는데요, 제 기억들 데리고 가서 눈물로, 희망으로 흩뿌리시면 돼요. 함께 하고 싶은 분들만.” 그래 나는 좀 말해야겠다(57-58).

 

     그래서 5장부터 수연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13장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갑니다. 그 과정은 매우 힘들고 어려워 글을 쓰면서 거의 매번 울었고, 어떤 때는 글쓰기를 중도에 멈추어야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보다 더 세밀하게 성폭력 상황을 묘사하는 글쓰기는” 자신에게 수치심을 안겨주었다고 진술합니다(189). 그리고 너무나 수치스러운 기억들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연은 용기 있게 그리고 끈질기게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대면합니다. 수연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자신의 끔찍한 상처를 직면하고 치유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어쩌면 수연도 글을 쓸 때 너무나 어두운 자신의 과거들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다면 덜 아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수연이 아픈 기억을 적당히 회피하려고 했다면 근원적인 치료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억은 감추거나 잊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narrate)하면서 치료됩니다. 수연은 글쓰기를 통해서 겪었던 변화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꿈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151).

말하기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보여주는 과정이었다면 글쓰기는 나 자신에게 나를 보여주는 과정 같다. 글쓰기를 시작한 뒤로는 혼자 많이 울었고, 써놓은 글을 보고 다듬으며 내 경험에 관한 내 생각도 조금씩 다듬어졌다(189).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자신만을 위해서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의 글이 “상처가 깊은 사람들에게 조금 힘이 날 수 있는 글”이기를, “그 사람들을 돕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이기를 바랍니다. 마치 자신이 영화 <도가니>와 안네 프랑크(Anne Frank)의 《안네의 일기》, 그리고 빅토르 프랑클(Viktor Frankl)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서 희망을 얻은 것처럼 말입니다(11-12, 134). 그래서 14장에서 16장까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처방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노출’과 ‘표출’과 ‘투자’입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그녀는 “이건 어디까지나 ‘수연의 처방전’이다. “당신만의 방법으로 치유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그러면 언젠가 당신의 잘 익은 상처에서 꽃향기가 날 것이다.”(204)라는 당부를 잊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 책은 원래 그녀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소식지인 《나눔터》에 약 4년 반 동안 게재한 글들을 모은 것인데, 그 글들은 많은 독자들에게 좋은 반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마지막 17장과 에필로그, 그리고 부록처럼 실려 있는 “아빠에게 보낸 편지”에는 약 17년 동안의 치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회복되고 성숙한 수연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그녀는 치유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자신에게 집중하는 “나뿐인 나쁜 놈”에서 다른 이들의 상처와 아픔을 인정하고 돕는 사람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연은 자신을 지지하고 함께 해주던 남자 친구와 이별한 한 뒤에 떠난 여행에서 “뜻밖의 용서”를 만나고 아빠를 용서하는 편지를 씁니다. 수연에게 있어서 용서는 문이 잠겨 진 방, 고통의 기억과 상처가 가득한 그 어두운 방에서 탈출하기 위한 열쇠였습니다. 그녀는 호주의 한 잠겨 진 방에서 “네, 용서하겠어요. 네 아빠부터 용서할게요. 잠그고 있던 거 풀게요. 나도 이제 문 열고 나가야겠어요.”(237)라고 하나님께 속삭입니다. 하지만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이사는 이것이 “수연이 성폭력 피해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거나 정답을 찾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고,” “수연이 이렇듯 책을 탈고하는 것은, 여기가 끝이 아니라 잠시 쉬었다가 또 갈 길을 찾아나서는 일이라”고 말합니다(8). 수연은 아마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나가면서 이전과 다른 폭풍우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책을 통해서 앞으로의 어려움들도 잘 헤쳐 나가리라는 믿음을 우리에게 줍니다.   


     이제 이 글을 시작하며 던졌던 질문의 답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우리는 왜 성폭력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어야 할까요? 어느 날 수연은 너무 힘들어 울면서 기도하다가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빛을 만나 반짝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순간의 경험은 수연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무리 아픈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일 수 있다 생각하니 나를 위해 더 많이 울어주고 싶었다.”(74)고 합니다. 그러면 그 눈물을 반짝이게 한 빛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이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인 “빛이 돼준 분들에게 한마디”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수연에게 빛이 되어준 이들은 다름 아닌 상처가 가득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웃어준 사람들입니다. 그녀에게 친절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준 이들, 그리고 그녀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친구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수연은 이 책의 맨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내 눈물에 찾아와준 빛들, 모두 참말로 고맙습니다.” (248). 이제 우리가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내면에 빛을 잃어 버리고 블랙홀에 빠진 ‘수연이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도울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땅의 많은 ‘수연이들’이 흘리는 눈물을 반짝이게 할 빛이 되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이현우는 책을 사회 변혁을 읽으킬 수 있는 폭발물에 비유합니다. 예를 들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때에 성서와 그의 글들을 자국어(독일어)로 읽고 쓰는 행위는 독일과 유럽 전역에서 종교개혁이라는 ‘혁명’을 읽으키는 근본적인 힘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모든 책이, 모든 읽기와 쓰기가 항상 변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현우는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 대한 서평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책이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 같은 것이기에 책을 너무 가까이하는 건 위험하다. 그렇다고 염려할 건 없다. 우리의 자연스런 방어기제도 이에 맞추어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읽어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고 ‘어쩐지 싫은 느낌’이 들어서 책을 덮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독서의 묘미’라고 한 작가 후루이 요시키치의 말을 인용한다. 이 ‘자연스러운 자기 방어’ 기제 덕분에 설사 감명 깊게 읽었더라도 곧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 이현우, <다시 읽는다는 것에 대하여>,  http://blog.aladin.co.kr/mramor/6939485


그렇다면 우리는 왜 수연의 이야기를 읽으며 불편함을 느끼는 것일까요? 단순히 폭행과 욕설이 너무 잔인하고 과격해서일까요? 아니면 수연의 이야기가 내 속에 감춰진 어떤 불편한 기억이나 욕망을 들쑤셔서 일어나게 하기 때문일까요? 이현우는 다시 루터가 강조한 ‘양심’이 오늘날까지도 재판의 준거가 된다는 예를 들며 “읽기와 쓰기는 그렇게 법제화로 귀결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가까운 곳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수연도 언급하지만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가 영화화되고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일명 ‘도가니법’이라는 성범죄자 처벌을 강화하는 법이 제정된 것입니다. 우리가 ‘방어기제’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며, 수연의 이야기처럼 불편한 책들도 덮지 않고 읽어 낸다면, 슬프고 어두운 세상을 변혁시키는 혁명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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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 책과 성폭력



1.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의 하나는 ‘수치심’입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우처럼 수연은 몸뿐만이 아니라, 아니 몸보다 마음에 더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상처의 이름들 중 하나가 ‘수치심’입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그 수치심을 극복해 가는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수연은 “‘내가 느껴야 할 수치심이 아니다, 그놈이 느껴야할 수치심이다.’ 스스로 아무리 주문처럼 외워봐도 수치심은 절대 지워지지 않을 그을음처럼 남아 있었다.”(189)라고 고백합니다. 심지어 수치심은 에필로그에서도 다시 등장합니다. “엷어지고 있다고 착각한 수치심과 분노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넌 나를 벗어날 수 없어. 넌 나랑 평생 가야 해’”(236). 이렇게 끈질긴 상처 ‘수치심’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성폭력 피해자들은 왜 수치심으로 고통을 받아야할까요? 왜 저자는 ‘은수연’이라는 필명으로 책을 내기를 선택했을까요? 그리고 ‘수연이들’이 그 수치심을 완전히 벗어 버릴 수 있도록 우리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2. 수연의 기억 속에서 그녀가 폭행을 당하는 때 가족들은 늘 침묵하거나 부재합니다. 수연의 가족들이 어떤 때는 아버지가 행사하는 폭력의 방관자와 협조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물론 당시의 상황과 그 가족이 놓인 특수성이 있습니다만, 유사한 일들이 어떤 가정에서 발생한다면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그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3. 수연의 이야기는 단지 비정상적인 한 가족의 이야기에 불과할까요? 아마 ‘수치심’이 동반되는 성폭력 피해의 특성 때문에, 수연의 이야기처럼 책으로 나오거나 뉴스에 알려지는 성범죄는 실제 일어나는 일들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9장 그때 그 사람들>에 나오는 트럭 운전수, 동네 오빠, 초등학교 선생님, 지하철 할아버지, 그리고 극장 옆자리의 아저씨 등 세상에는 여성을 자신의 욕구 해소를 위한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수연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폭력을 당할지도 모를 사람이 매사 조심하고 의심하는 게 성폭력 예방이 아니다. 성폭력 예방 주사는 사회 구성원 모두 맞아야 하는 게 아닐까?”(126) 그러면 어떻게 하면 사회적 차원에서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께서 생각하는 성폭력 예방 주사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4. 수연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세 가지 처방전들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자신의 아픔을 혼자만 안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에게 노출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출’ 또는 배설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지요. “독하게 욕하고, 처절하게 싸우고, 건방지게 따지는 시간을 통해 당신 안의 눌리고 감춰진 감정을 표출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기를 바란다. 당신의 상처가 잘 익어가도록.”(204) 그리고 세 번째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어 왔던 자기 자신을 그만큼 더 사랑하고 위해서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이 중 여러분들이 공감하거나 조심스러운 방법들이 있나요? 아니면 더 추가하고 싶은 처방전이 있으신지요? 그리고 예수님께 기도하며, 다양한 욕으로 자신의 분노를 격렬하게 표출한 것(191)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도가 그렇게 되어도 될까요?



5. 그리고 여러분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들을 말씀해 주세요.







두 번째 이야기 : 책과 나

 


1. 수연의 고통에서의 탈출은 아빠라는 사람이 세뇌하듯 반복해서 말했던 ‘거짓’을 직면하고 진실을 깨닫게 되면서 서서히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라던 그 사람의 말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사실을 말하면 죽게 될지도 모르는 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은, 내가 집에서 아빠에게 겪은 일을 한 사람 두 사람 외부인에게 말하게 된 때였다.”(11) 거짓은 우리를 절망하고 겁먹게 합니다. 반대로 진실은 우리에게 참된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오늘 내가 맞서야 할 거짓, 내가 알아야 할 진실이 있습니까? 함께 나누어 봅시다.



2. 수연은 자신의 상처를 노출하되 상대방이 “들을 귀와 마음이 있는 사람인지 철저히 살피지 않으면 오히려 노출이 내 상처를 더 깊게 할 수 있다”(184)고 말합니다. 그런데 수연에게 이런 깨달음을 준 사람은 그녀의 엄마입니다. 괴물과 같이 딸을 성폭행하는 아빠로부터 딸을 지켜줘야 할 엄마가 오히려 딸이 아빠랑 ‘붙어먹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의 아픈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을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들어 주는 사람, 읽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상처 입은 사람들은 그 상처를 가슴에 안고 계속 피를 흘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의 특히 가족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들을 귀 있는 사람’입니까? 또한 여러분의 주변에는 이렇게 ‘들을 귀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3. “나는 쉽사리 용서를 말하고 싶지 않다.”(198) “용서는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될 거다.”(236) 이렇게 말하며 용서를 미뤄 오던 수연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드디어 아빠를 용서하게 됩니다. 이러한 수연의 용서 이야기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을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 속에서 아들을 살해한 사람에게 용서한다는 말을 하려고 힘겨운 마음으로 면회를 간 신애는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며 편안한 맘으로 지내고 있는 살해범을 만나고서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상처와 용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용서의 과정은 어떠해야 할까요? 혹시 여러분이 지금 ‘보류하고 있는 용서’가 있습니까?

 


4. 수연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꼭 물어 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 왜 제게는 개 같은 아빠를 주셔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강간을 당하게 하셨나요?’ …… 이 글이, 내 삶이, 내가 살아내고 견뎌낸 고통의 시간이 의미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당신에게”(166). 고통의 의미에 대해서 명쾌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고, 또 섣불리 이야기하는 것은 고통을 겪은 이들에 대한 실례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수연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있어서 고통의 의미란 이런 것이다.’라고 여러분의 지혜를 나누어 주실 수 있나요?



5. 책을 읽고, 또 함께 이야기하며 자신 안에 일어나기 시작한, 또는 일어나기를 바라는 변화가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치유 일기 쓰기’를 시작하고 싶으신 분이 계신지요?






오늘의 말씀


 멸망할 바빌론 도성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를 그대로 너에게 되갚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네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시편137편 8-9절/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