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이 시점이다

 

 

 

 

 

종점(終點)이 시점(始點)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 (종시부분)

 

시인 윤동주의 짧은 에세이 종시(終始)는 이와 같은 단순한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윤동주가 쓴 산문은 모두 네 편이 전해지는데, 종시는 그 중에 하나로서, 그가 연희전문학교 2학년 때인 1939년 무렵에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글에서 윤동주는 자신이 전차를 타고 아침저녁으로 서울 시내를 오가며 관찰한 장면들과 거기에 따른 생각들을 다소 익살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용을 보면 그가 묘사하고 있는 거리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명랑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는 전차가 정류장에 설 때마다 다들 손에 꾸러미 하나씩 들고 꾸역꾸역 전차에 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이 꾸러미를 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씩 뜯어보기로 한다. 늙은이 얼굴이란 너무 오래 세파에 찌들어서 문제도 안 되겠거니와 그 젊은이들 낯짝이란 도무지 말씀이 아니다. 열이면 열이 다 우수(憂愁) 그것이요, 백이면 백이 다 비참 그것이다. 이들에게 웃음이란 가물에 콩싹이다. 필경 귀여우리라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수밖에 없는데 아이들의 얼굴이란 너무나 창백하다. 혹시 숙제를 못 해서 선생한테 꾸지람 들을 것이 걱정인지 풀이 죽어 쭈그러뜨린 것이 활기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종시부분)

 

이처럼 당시 윤동주가 목격한 거리의 사람들은 늙은이와 젊은이, 심지어 어린이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근심과 걱정과 슬픔이 가득한 비참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당시의 사람들이 활기를 잃고 세파에 찌들거나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모두가 생활의 꾸러미”, 곧 각자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모두 일제강점기라는 참으로 슬프고 비극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윤동주는 자신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동족들의 모습을 담담하면서도 슬프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19389월에 쓴 4행으로 된 짧은 시에서는 흰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흰 고무신을 신은 평범한 조선 여인()의 모습을 묘사고 있는데, 시인은 이 시에다 슬픈 족속이라는 제목을 붙여 두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때에 쓴 아우의 인상화라는 작품에서는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라고 묻는 형의 질문에 사람이 되지라고 서러운 대답을 하는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처럼 윤동주 시인은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글에다 담아 두었습니다. 그도 당시 장차 졸업 후 자신의 진로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시기였지만, 그는 자신의 문제에만 빠져 있지 않고, 고개를 들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나아가 자신의 글로써 병원 속의 환자와 같이 가슴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시인이란 슬픈 천명을 받아들이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쉽게 씌어진 시). 이러한 시인 윤동주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건네고자 했던 위로는 그저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에서 나오는 근원적인 위로였습니다.

 

나는 종점을 시점으로 바꾼다.

내가 내린 곳이 나의 종점이요, 내가 타는 곳이 나의 시점이 되는 까닭이다.” (종시부분)

 

윤동주가 살아가던 시대는 종점과 같이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과 같은 때였지만, 그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 오늘을 시작점으로 바꾸기를 원했습니다. 사실 모든 것이 끝인 것 같은 막다른 골목이라 할지라도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길이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 땅에서의 죽음도 하늘에서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지요. 윤동주는 전차를 타고 서울 시내를 지나가다가 철로 공사를 하는 노동자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용 궤도차에다가 서투른 글씨로 신경행(新京行)”, “북경행(北京行),” 또는 남경행(南京行)”과 같은 중국 도시의 이름을 목적지로 써 붙이고, 차를 밀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도로 위에서 일을 해야 하는 고된 생활을 살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 견디며 살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윤동주는 종시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은 바람으로 희망차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곧 종시를 바꿔야 한다. 하나 내 차에도 신경행, 북경행, 남경행을 달고 싶다. 세계일주행이라고 달고 싶다. 아니 그보다 진정한 내 고향이 있다면 고향행을 달겠다. 다음 도착하여야할 시대의 정거장이 있다면 더 좋다. (종시부분)

 

윤동주가 바란 새로운 시대의 정거장은 어디였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광복의 날, 슬픈 족속이 다시 환희를 되찾게 될 날, 서러운 아우의 얼굴이 벅찬 꿈으로 상기될 날이 아니었을까요? 너무나 안타깝게도 윤동주는 우리 민족이 해방되기 불과 6개월 전인 1945216, 일본 후쿠오카의 외로운 감방에서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옥사하였지만, 그가 남긴 아름다운 시편들은 지금도 삶의 종점에서 절망하고 슬퍼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향한 위로와 희망을 전해줍니다.

 

 

 

Magazine Hub 68 (2018년 12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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