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들리는 소리

 

 

시월이 점점 다가오자, 전도사님들의 얼굴 표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그들은 이번 가을 노회 때 목사 안수를 받기로 예정된 이들이다. 기대와 설레임일까, 아니면 긴장감이나 부담감일까? 어쩌면 둘 다 교차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안수받기 전에 기도 많이 하시고, 잘 생각해보세요. 정말 안수를 받을 건지.”

 

이것은 그들이 뭔가 부족해 보이거나 마음 바꾸기를 바라서 한 말이 결코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주변에서, 안수를 받고 부목사로 한두 해 일하다가 스스로 목사 가운을 벗어버린 이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목사로서 경험한 교회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한 것 같다. 그렇게 목사가 된 후 그만두게 되면, 그것은 마치 결혼하였다가 이혼한 것과 같아서 () 목사라는 꼬리표가 평생 그를 따라 다닐 것이다.

 

언젠가 한 전도사님과 대화를 하다가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는지 물어 보았다. 그런데 그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한 젊은이는 목사의 아들이다. 그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개척교회를 섬기시는 아버님을 도우며 자라났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그는 목사가 되는 것을 아무런 의심이나 회의없이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듯하였다. 아마 그는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만큼 자신의 소명이 확실하다는 뜻에서 한 대답이었겠지만, 그의 말을 듣고서 나의 마음에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글 한 대목이 떠올랐다. 릴케는 1903 2 17일 파리에서 쓴 편지에서 시인의 길을 고민하고 있는 젊은이 프란츠 카푸스에게 다음과 같이 권하고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당신 자신 속으로 들어가세요. 그럼으로써 당신에게 자꾸 쓰라는 명령을 내리는 그 근거를 한 번 캐어 보세요. 그런 다음 쓰고 싶은 욕구가 당신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뿌리가 뻗어 나오고 있다면, 또 쓰는 일을 그만두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 있는지 본인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리고 조용한 밤중에, 정말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확인해 보십시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릴케는 젊은 시인 지망생에게 깊은 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말한다. 그래서 만약 마음속에서 글을 쓰는 것을 그만두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다는 절실한 외침이 들려온다면, 그 필연(必然)으로 자신의 생애를 만들어 가라고 권한다. 심지어 일상의 쓸모 없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그 절실한 충동에 대한 증거가 되게 하라고, 곧 자신의 삶의 매우 사소한 순간도 그 열망을 이루기 위한 시간으로 삼으라고 말이다.

 

깊은 밤은 고독 속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하기에 매우 좋은 시간이다. 릴케를 사랑하고, 산책길에 릴케의 시집을 손에 들고 나서던 시인 윤동주도 그러했다. 그도 고요한 밤에 홀로 앉아 시를 쓰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자신을 대면하곤 하였다. 남아 있는 그의 작품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가 194263일에 쓴 쉽게 씨워진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조선에서 건너온 한 젊은이가 일본 동경의 하숙방에 앉아 있다. 창밖에서 빗소리가 속살거리듯 들려오는 깊고 고요한 밤, 그는 세 평 남짓의 작은 다다미방에 홀로 앉아 시인이라는 슬픈 천명(天命)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바로 그 전해, 곧 그가 연희전문학교 졸업반이었던 1941, 당시 윤동주는 졸업 후 진로를 두고 많은 고민 가운데 있었다. 고향에 있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가 유망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기를 바랐지만, 그는 오로지 시인의 길을 고집하였다. 그리고 결국 이듬해 도쿄에 소재한 기독교 사립학교인 릿쿄대학 영문과로 진학했다. 그리고 쉽게 씨워진 시에 적힌 것처럼, 그는 부모님의 땀내와 사랑내 포그니 품긴/ 보내 주신 학비봉투를 받어//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려다녔다.

 

윤동주가 이 작품을 쓸 때 릴케의 유작인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1929)를 읽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마치 그 편지에서 릴케가 젊은 시인 지망생에게 조언한 것을 직접 읽은 것처럼, 동주는 깊은 밤 홀로 자신 속으로 침전하며,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동주는 동족들이 억압 가운데 있는 살기 어려운 시대에, 자신은 한가로이 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있으며, 시도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깊은 밤의 고독 속에 결국 시인이라는 슬픈 천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등불 하나 밝히듯 시를 써내려 간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츰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씨워진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는 그렇게 일본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우리말로 시를 쓰다가 그 다음해인 1943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된다. 그리고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일본의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복역하다가 광복 6개월 전인 1945216일에 비통한 죽음을 맞았다. 이렇게 식민지 청년 윤동주는 자신이 쓴 십자가의 한 구절과 같이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렸다. 마치 릴케의 권면을 염두에 둔 것처럼 윤동주는 자신의 천명을 따라 시인의 길을 걷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아마도 그 젊은 시인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맞게 될 비극적인 운명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해도 시인의 삶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은 목사가 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젊은 전도사님에게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강렬한 내적 열망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그리고 릴케와 윤동주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가 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또는 공감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미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그를 돌려 보내고 영락수련원의 상담실에 홀로 앉아 그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되돌아 보았다. ‘나는 왜 그렇게 꼰대와 같이 말했던가?’ 그것은 아마도 한 번씩 나의 마음이 갈대와 같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한산성의 밤은 깊었고, 창밖 밤하늘에는 작은 별들이 천진하게 반짝거렸다.

그 별들을 보니 윤동주의 서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월간 문화목회〉40(2023년 10월호), 23-27에 게재된 글을 옮겨놓는다. 

'시와 수필 > 문화목회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는 예수님, 저희가 여기 있습니다.  (0) 2023.12.19
찌질한 이야기  (0) 2023.11.12
선물의 집  (0) 2023.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