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

 

 

5월 12일

12년 전 

아버지께서 

사망선고를 받은 날

 

12년 후 그날

5월 12일

아버지의 차는

운행 중지 진단을 받았다

 

주행거리 12만 킬로미터

2009년식 SM5 LE

장애인용 LPG

 

더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더 사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일주일 전 오일들도 모두 바꾸고

브레이크패드도 새 것으로 달아주었는데

그래서 수술을 받으시러 병원에 들어가시기 전

새 남방도 두 벌 사서 걸어두셨는데

 

언제나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아버지가 아껴 타시다 물려 주신 차

영정 속의 아버지가 타시고 

마지막 여행을 했던 차

즐거운 길도, 힘든 길도 

나와 함께 달렸던 고마운 차

지난 어린이날도 가족들의 

웃음을 가득 싣고 달렸던 차

 

일주일 동안 지하주차장에 

안치해 두고서

깊은 밤 남 몰래 흘렸다 

굵은 눈물을

중환자실 마지막 밤

아버지처럼

 

어떻게 하겠는가

여행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야지

나눠줄 것 나눠주고 

가볍게 떠나야지

 

폐차장에 차를 남겨 두고 

뒤돌아서는데

화로 속에 관이 들어가던

그날이 

자꾸 생각난다

 

 

2025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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