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의 아흔아홉 번째 생일이다. 그가 1915년 1월 31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국제토마스머튼학회에서는 내년에 그의 100번째 생일을 맞아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나대로 오늘 그의 99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머튼의 시를 한편 게시한다. 수년 전 머튼에 관한 수업을 들을 때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과 읽기 위해서 번역한 것이다. 글을 올리기 전에 대충 다듬었지만,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머튼의 시는 영어로도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번역된 시가 더 어렵게 된 것 같다. 나의 번역 실력과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혹시 읽고 수정을 제안해 주실 분이 있다면 좋겠다. 


참고로 '엘리야-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라는 제목처럼 구약성서 열왕기상 17장~열왕기하 2장에 나오는 엘리야의 이야기가 이 시의 중심 주제이며, 소재이다. 그리고 시가 전체 I, II, III, IV 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부분이 변주곡의 1,2,3,4 악장과 같이 각각 다른 리듬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시에 대한 자세한 해석과 감상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어설픈 해석이 다른 이들의 감상을 방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LIAS-Variations on a Theme  



 

Under the blunt pine

In the winter sun

The pathway dies

And the wilds begin.

Here the bird abides

Where the ground is warm

And sings alone.

 

Listen, Elias,

To the southern wind

Where the grass is brown,

Live beneath this pine

In wind and rain.

Listen to the woods,

Listen to the ground.

 

O listen, Elias

(Where the bird abides

And sings alone),

The sun grows pale

Where passes One

Who bends no blade, no fern.

Listen to His word.

 

"Where the fields end

Thou shalt be My friend.

Where the bird is gone

Thou shalt be My son."

 

How the pine burns

In the furious sun

When the prophets come

To Jerusalem.

(Listen, Elias,

To the covering wing?)

To Jerusalem

Where the knife is drawn.

 

(Do her children run

To the covering wing?)

Look, look, My son,

At the smashed wood

At the bloody stone.

Where the fields end

And the stars begin

Listen, Elias,

To the winter rain.

For the seed sleeps

By the sleeping stone.

But the seed has life

While the stone has none.

 

"Where the fields end

Thou shalt be My friend.

Where the bird is gone

Thou shalt be My son."

 

엘리야-주제에 의한 변주곡



 

투박한 소나무 아래

겨울 태양 속에서

오솔길은 사라지고

광야는 시작된다.

여기 따스한 대지에

새가 머무르고

홀로 노래한다.

 

귀 기울여라, 엘리야여

남쪽, 초원이 시들어 가는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이 소나무 아래 살라

바람과 빗속에서.

숲에 귀를 기울여라

대지에 귀를 기울여라

 

오 들으라, 엘리야여

(새가 머무르며

홀로 노래하는 그곳에서),

그분이 지나가는 그곳에서

태양은 창백해진다.

그분은 풀잎도 고사리도 꺾지 않는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라.


들판이 끝나는 그곳에서

그대는 나의 친구가 되리니.

새가 가버린 그곳에서

그대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맹렬한 태양 속에서

소나무는 어떻게 타는가

예언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 때.

(들으라, 엘리야여,

덮는 날개를?)

예루살렘으로

칼이 뽑혀지는 그곳으로 올 때.

 

(그녀의 아이들이

그 덮는 날개 아래로 달려가는가?)

보라, 보라, 나의 아들아,

산산이 부서진 나무를

피투성이의 돌을.

들판이 끝나고

별들이 시작하는 곳

들으라, 엘리야여,

겨울비를.

왜냐하면 잠자는 돌 옆에서

씨앗이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돌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씨앗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

 

들판이 끝나는 곳에서

그대는 나의 친구가 되리니.

새가 가버린 곳에서

그대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There were supposed to be

Not birds but spirits of flame

Around the old wagon.

("Bring me my chariot")

There were supposed

To be fiery devices,

Grand machines, all flame,

With supernatural wings

Beyond the full creek.

("Bring me my chariot of fire")

All flame, beyond the rotten tree!

Flame? This old wagon

With the wet, smashed wheels

Is better. ("My chariot")

This derelict is better.

("Of fire.") It abides

(Swifter) in the brown ferns

And burns nothing. Bring me ("Of fire")

Better still the old trailer ("My chariot")

With the dead stove in it, and the rain

Comes down the pipe and covers the floor.

Bring me my chariot of rain. Bring me

My old chariot of broken-down rain.

Bring, bring my old fire, my old storm,

My old trailer; faster and faster it stands still,

Faster and faster it stays where it has always been,

Behind the felled oaks, faster, burning nothing.

Broken and perfect, facing south,

Facing the sound of distant guns,

Facing the wall of distance where blue hills

Hide in the fading rain.

 

Where the woods are cut down the punished

Trailer stands alone and becomes

(Against all the better intentions of the owners)

The House of God

The Gate of Heaven.

("My chariot of fire")

 

 

낡은 수레의 주변에는

새들이 아니라

불꽃의 영들이 있어야 했다.

(“내게 나의 전차를 가져오라.”)

물이 가득 차오른 시내 너머에는

초자연적인 날개들을 가진

불같은 장치들,

거대한 기계들, 모든 불꽃이 있어야 했다.

(“내게 나의 불의 전차를 가져오라”)

모든 불꽃, 썩은 나무를 넘어서!

불꽃? 바퀴가 물에 젖고 부서진 

이 낡은 수레가

더 낫다. (“나의 전차”)

이렇게 버려지는 것이 더 낫다.

(“불의.”) 그것은

(더 빠르게) 마른 고사리들 속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불태우지 않는다. 나에게 가져오라 (“불의”)

훨씬 조용한 낡은 트레일러를 (“나의 전차”)

그 안에 불 꺼진 난로가 있고, 비는

파이프로 흘러내려서 바닥을 덮는다.

내게 나의 비의 전차를 가져오라. 내게 가져오라

나의 망가진 비의 낡은 전차

가져오라, 가져오라 나의 오래된 불을, 나의 오래된 폭풍을,

나의 낡은 전차. 빨리 더 빨리 그것은 가만히 서 있다,

빨리 더 빨리 그것은 항상 있던 곳에 정차하고 있다,

쓰러진 떡갈나무 뒤에서, 더 빨리, 아무 것도 불사르지 않는다.

부서지고 완전한 채로, 남쪽을 향하고

멀리서 울리는 총소리를 향햐고

멀리 있는 벽을 향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푸른 언덕들이 

사라지는 빗속에 숨는다

 

숲이 잘려나간 그곳에 형벌 받은

트레일러가 홀로 서있다 그리고

(주인들의 더 나은 의도들을 모두 거스르고서)

하나님의 집이 된다

천국의 문이 된다.

(“나의 불의 전차”)

 

 

 

The seed, as I have said,

Hides in the frozen sod,

Stones, shaped by rivers they will

Never care about or feel,

Cover the cultivated soil.

The seed, by nature, waits to grow and bear

Fruit. Therefore it is not alone

As stones, or inanimate things are:

That is to say, alone by nature,

Or alone forever.

 

Where do so many waters come from on an empty hill?

Rain we had despaired of, rain

Which is sent from somewhere else, descended

To fix an exhausted mountain.

Listen to the waters, if possible,

And discern the words "False prophet"

False prophet! "So much better is the water's message,

So much more confident than our own. It is quite sure

You are a false prophet, so 'Go back'

(You have not had the patience of a rock or tree)

Go back into the cities. They want to receive you

Because you are not sent to them. You are a false prophet."

 

Go back where everyone, in heavy hours,

Is of a different mind, and each is his own burden,

And each mind is its own division

With sickness for diversion and war for

Business reasons. Go where the divided

Cannot stand to be too well. For then they would be held

Responsible for their own misery.

 

And I have been a man without silence,

A man without patience, with too many

Questions. I have blamed God

Thinking to blame only men

And defend Him Who does not need to be defended.

I have blamed ("defended") Him for Whom the wise stones

(Stones I lately condemned)

Waited in the patient

Creek that is now wet and clean of all ruins.

So now, if I were to return

To my own city (yes my own city), I would be

Neither accepted nor rejected.

For I have no message,

I would be lost together with the others.

 

 

 

씨앗은, 내가 말한 대로,

얼어버린 잔디밭 속에 숨는다.

돌들은, 강물에 깎인 채로

결코 경작된 땅에 마음을 쓰거나,

그 땅을 느끼거나, 덮지 않을 것이다.

씨앗은, 본래 자라서 열매 맺기를

기다린다. 그러므로 그것은 혼자가 아니다

한편 돌들은, 또는 생명이 없는 것들은

, 본래 혼자다

또는 영원히 혼자다.

 

어디서부터 아주 많은 물들이 빈 언덕으로 내려오는가?

, 우리를 절망하게 했던 비는

어떤 다른 곳에서부터 보내진 비는

고갈된 산을 회복시키기 위해 내린다.

물에 귀를 기울여라. 가능하다면,

그리고 거짓 선지자란 말을 식별해보라

거짓 선지자! “훨씬 더 좋은 것은 물의 메시지다,

우리의 것보다 훨씬 더 확실하다. 아주 분명하게

너는 거짓 선지자이다, 그러니 돌아가라

(너는 바위나 나무의 인내를 가지지 못했다.)

그 도시들로 돌아가라. 그들은 네가 돌아오길 원한다.

왜냐하면 너는 그들에게 보내지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거짓 선지자다.”

 

돌아가라 그곳으로, 모두가 힘겨운 시간 속에서,

다른 마음을 품는 곳으로, 각자가 자신의 짐인 곳으로

그리고 각자의 생각이 그 자신의 분열인 곳으로

유희와 전쟁에 대한 메스꺼움을 가지고

상업을 위해. 가라 그곳으로, 분열된 자들이

너무 잘 있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곳으로. 왜냐하면 그때에 그들은

그들 자신의 비참함에 대해 책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침묵이 없는 사람이다,

너무나 많은 질문들을 가진 인내심 없는 사람이다.

나는 오로지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비난해왔다.

그리고 변호받을 필요가 없는 그분을 변호한다.

나는 그분을 비난해왔다(변호해왔다). 현명한 돌들이

(내가 최근에 정죄한 돌들이)

그 병든 시내 속에서 기다려 온 그분을.

그 시내는 지금은 물이 흐르고 모든 페허들이 정리되었다.

그래서 지금, 만약 내가 나 자신의 도시로

(그렇다 나 자신의 도시이다) 돌아간다면, 나는 아마도

받아들여지지도 거절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런 메시지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길을 잃게 될 것이다.

 

 

 

Under the blunt pine

I who am not sent

Remain. The pathway dies,

The journey has begun.

Here the bird abides

And sings on top of the forgotten

Storm. The ground is warm.

He sings no particular message.

His hymn has one pattern, no more planned,

No less perfectly planned

And no more arbitrary

Than the pattern in the seed, the salt,

The snow, the cell, the drop of rain.

 

(Snow says: I have my own pattern;

Rain says: no arbitrary plan!

River says: I go my own way.

Bird says: I am the same.

The pine tree says also:

Not compulsion plants me in my place,

No, not compulsion!)

 

The free man is not alone as busy men are

But as birds are. The free man sings

Alone as universes do. Built

Upon his own inscrutable pattern

Clear, unmistakable, not invented by himself alone

Or for himself, but for the universe also.

 

Nor does he make it his business to be recognized

Or care to have himself found out

As if some special subterfuge were needed

To get himself known for who he is.

 

The free man does not float

On the tides of his own expedition

Nor is he tides of his own expedition

Nor is he sent on ventures as busy men are,

Bound to an inexorable result:

But like the birds or lilies

He seeks first the Kingdom, without care.

Nor need the free man remember

Any street or city, or keep campaigns

In his head, or countries for that matter

Or any other economy.

 

 

보냄받지 않는 나는

투박한 소나무 아래에

남아 있다. 오솔길은 사라지고,

여행은 시작되었다.

여기 새가 머무르고

잊혀진 폭풍우의 꼭대기에서 노래한다.

대지는 따스하다.

그는 특정한 메시지를 노래하지 않는다.

그의 찬송에는 하나의 양식이 있는데

그건 계획된 것 이상도 아니며

완벽하게 계획된 것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씨앗, 소금

, 세포, 빗방울 속의 양식보다도

더 임의적인 것도 아니다.

 

(눈이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의 양식이 있다.

비가 말한다.: 임의적인 계획은 안 된다!

강이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의 길을 간다.

새가 말한다.: 나도 같다.

소나무 또한 말한다.:

나를 강제로 나의 장소에 심지 말라,

안 돼, 강제로는 안 돼!)

 

자유로운 사람은 바쁜 사람들처럼 혼자인 것이 아니라

새들처럼 혼자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우주가 그런 것처럼 홀로 노래한다. 그 자신의

헤아릴 수 없는 양식 위에 세워졌다.

그 양식은 분명하고, 틀림없다. 또한 그가 혼자서

또는 그 자신을 위해서 고안한 것이 아니라 우주도 위한 것이다.

 

마치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지게 하기 위해

얼마간의 특별한 속임수들이 필요한 듯이

그는 그의 일이 인정받도록 만들거나

그 자신이 나타나도록 신경쓰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의 원정의 조류 위에서

표류하지도 않고

그는 자신의 원정의 조류가 아니며

또한 바쁜 사람들처럼 모험에 보내지지도 않는다,

냉혹한 결과에 묶여 있지만

그러나 새들이나 백합들과 같이

그는 염려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

또한 자유로운 사람은 어떤 거리나 도시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 또는 캠페인들을

머릿속에 넣어 둘 필요가 없다또는 그 문제에 관한

나라들 또는 어떤 다른 경제도.

 

Under the blunt pine

Elias becomes his own geography

(Supposing geography to be necessary at all),

Elias becomes his own wild bird, with God in the center,

His own wide field which nobody owns,

His own pattern, surrounding the Spirit

By which he is himself surrounded:

 

For the free man's road has neither beginning nor end.

 

1957

투박한 소나무 아래서

엘리야는 그 자신의 지리가 된다

(만약 지리가 조금이라도 필요하다면),

엘리야는 그 자신의 들새가 된다, 중심에 계신 하나님과 함께,

아무도 소유하지 않은 그 자신의 넓은 들판이 된다,

그 자신의 양식이 된다, 그는 성령을 두르고 있으며

그 자신은 성령에 의해 둘려진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사람의 길은 시작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1957

출처 : Thomas Merton, The Collected Poems of Thomas Merton. New York: New Directions, 1977, p.239-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