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기독교 영성 고전 학당의 팀블로그(spirituality.co.kr)에 쓴 글을 옮겨 놓는다.



토마스 머튼윌리엄 쉐넌(1)

고요한 등불 (Silent Lamp)


사진1. The Merton Seasonal 표지에 실린 윌리엄 쉐넌의 초상화


     이 달의 추천 도서로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독서를 위한 윌리엄 쉐넌(William H. Shannon, 1917-2012)의 책들을 선정하였습니다. 쉐넌은 머튼을 좀 더 잘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또는 머튼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안내자(guide)입니다. 그는 머튼의 타계 직후인 1970년대부터 그가 가르치던 나사렛 대학교(Nazareth College, Rochester, New York)에서 머튼 강의를 시작했고, 1887년에는 몇 명의 학자들과 함께 국제 토마스 머튼 학회(International Thomas Merton Society)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머튼의 사후에 출간된 많은 머튼의 글들(1차 자료들)이 그의 손을 거쳤으며, 머튼에 관한 중요한 해설서, 평전, 사전, 논문들(2차 자료들)의 목록에도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습니다. 실로 그는 머튼 연구의 선구자이며, 탁월한 머튼 학자(Merton scholar)입니다. 그래서 2년 전인 2012년 4월 29일, 윌리엄 쉐넌이 94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국제 토마스 머튼 학회의 계간지 The Merton Seasonal은 쉐넌을 특집 주제로 다루며 그를 기념하였습니다(사진1). 이에 현재 국내에 번역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토마스 머튼 독서에 도움이 되는 쉐넌의 책들을 몇 번에 걸쳐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아직 학생으로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는 까닭에 4월의 추천 도서로 이 글을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마무리 하는 데에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사진2. Silent Lamp 영문판

   먼저, 머튼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쉐넌이 쓴 머튼 평전 《고요한 등불: 토마스 머튼의 이야기》(은성, 2008)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 번역본의 원전은 Silent Lamp: The Thomas Merton Story(NY: Crossroad, 1996)입니다. 나사렛 대학교에서 쉐넌 교수에게 직접 머튼을 배운 오방식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가 번역하였습니다. (제가 오방식 교수님을 통해서 머튼을 알게 되고 배웠으니, 쉐넌은 저에게 스승님의 스승님이 되는군요.) 


     한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생애를 아는 것은 매우 많은 도움이 됩니다. 토마스 머튼의 경우에는 유명한 자서전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1948)이 있지요. 물론 《칠층산》은 머튼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듣는 그의 생애 이야기이지만, 비교적 초기의 작품이라 이후 약 20여년 간의 그의 삶은 담겨져 있지 않습니다. 머튼은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칠층산》이 출판 된 지 몇 년 후, 그는 "칠층산의 머튼은 이미 죽었다"라고 선언할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해 갔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역동을 담아 내고 있는 것은 머튼의 전기들입니다.


     현재까지 머튼의 전기들은 영어로 여러 종류가 출간되어 있는데요, 그중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마이클 모트(Michael Mott)가 쓴 The Seven Storey Mountains of Thomas Merton[토마스 머튼의 칠층산](1984)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머튼의 일생에 대해 매우 자세한 내용까지 담고 있는 연구서이기 때문에 분량이 매우 두껍습니다. 그리고 머튼에 대한 다양한 모자이크 조각들을 담고 있어서 머튼 초보자들이 읽기에 쉽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한 아직 한국어 번역본도 없습니다. 쉐넌의 《고요한 등불》도 한국어 번역본이 564쪽에 이르기 때문에 결코 짧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토마스 머튼의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이야기식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독서하기에 버거운 정도는 아닙니다. 그의 생애와 관련된 세부적인 사건/사실들은 장(chapter) 중간 중간에 삽입된 연대기에 담겨져 있고, 본문에서는 각 장의 주제와 관련된 사건들만 선택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번역도 머튼을 전공한 학자가 했기 때문에 원문의 의미를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저를 비롯한 몇 명의 대학원생들이 수 차례에 걸쳐 교열, 윤문 작업에 동참했기에 문장도 매끄러운 편입니다. 물론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머튼의 생애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을 관통하고 있는 저자, 윌리엄 쉐넌이 쓴 평전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머튼에 대한 종합적이면서도 분명한 이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림으로 비유하면 추상화가 아니라 사실주의적인 인물화라고 할까요? 그렇다면 이 책에서 쉐넌이 그리고 있는 머튼은 어떤 인물일까요? 그것은 이 책의 제목 "고요한 등불(Silent Lamp)"에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가 이러한 제목을 붙이게 된 경위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래 "고요한 등불(Mei Teng)"이라는 말은 머튼이 《장자의 길(The Way of Chuang Tzu)》이라는 책을 쓰는 데 도움을 주었던 중국인 학자 존 우(C. H. Wu)가 1965년에 머튼에게 붙여 준 중국식 이름입니다. 쉐넌은 이 때가 머튼의 생애에 있어서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때, 곧 완전히 은수자(hermit)로 살기 시작한 때이고, 이 이름이 머튼이 가톨릭을 넘어서 보편적인 영성을 향해 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 생각해서 그것을 제목으로 채택하였다고 합니다. 나아가 쉐넌은 머튼을 많은 이들의 영적인 삶에 빛을 비추는 "등불"로, 그리고 시대와 공간과 전통과 문화를 넘어서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보편적 인물(homo universalis)"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머튼의 관상적 영성(comtemplative spirituality)에서 찾습니다.(29-34쪽). 그러므로 아마 이 책에서 그리는 머튼을 단 한 단어로 요약을 한다면 '관상가(contemplative)'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관상가'라는 단어는 일종의 상징과 같아서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머튼의 경우, '작가', '사회비평가'라는 정체성이 '관상가'에 포함되지요. 그리고 머튼은 수도원에 들어 가기 이전부터,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살 때부터 '관상가'였습니다.  

 

사진3. <고요한 등불>한글 번역판

   전기류의 글이면서도 특이하게도 이 책은 제1장을 토마스 머튼의 은사(gift)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쉐넌이 선정한 머튼의 주요한 은사 세 가지는 문재(文才, 글쓰기)와 신앙, 그리고 수도자로서의 소명입니다. 이 세 가지는 재능(talent)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머튼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gift)라는 관점에서 이해되는 것이 더 적당할 듯합니다. 이후에 전개되는 장들에서 이 은사들이 각각의 또는 공통의 흐름을 이루면서 이야기를 끌어 갑니다. 제2장부터 제6장까지는 수도자가 되기 이전까지의 머튼의 삶을 다섯 시기로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주로 자서전 《칠층산》에 담겨진 내용들이지만, (아마도 수도원 장상들의 뜻으로) 집필/출판 과정에서 생략되거나 완화된 뒷 이야기(behind story)들도 함께 담겨져 있어서 칠층산의 머튼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7장에서 제9장까지는 그가 겟세마니 수도원에 들어간 1941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각각의 장이 첫 번째 장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은사를 하나씩 제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세상으로 돌아옴"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10장은 '세상을 버리고' 수도원으로 들어 갔던 머튼이 1958년 결정적인 방향 전환(또는 성장)을 경험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 온'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귀환' 이야기는 이른바 '성숙한 머튼(mature Merton)'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입니다. 이후 머튼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8년에 갑작스럽게 타계할 때까지 냉전과 평화, 인종 평등, 수도원 갱신, 종교 간의 대화 등의 사회적 이슈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썼는데, 이 내용은 제11장에서 제14장에 담겨 있습니다. 탁월한 머튼 학자 쉐넌은 이 마지막 장들에서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머튼의 사상을 그의 생애를 바탕으로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쉐넌이 이 책의 한국어판에 부치는 "감사의 글"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한국에 계시는 친애하는 독자님들, …… 우리를 분리하는 것은 단지 지리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모두의 존재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우리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는 사랑의 근원이신 한 분이신 하나님 안에서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6쪽). 저는 만약 머튼이 자신의 평전의 서문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글을 쓴다면 바로 이렇게 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머튼은 "숨어 있는 사랑의 근원(the Hidden Ground of Love)"이신 하나님 안에서 모든 인류가 하나로 연합되어 있음을 경험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토마스 머튼도, 윌리엄 쉐넌도 모두 이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가 그들이 남긴 글들을 읽고, 인류의 하나됨에 대한 그들의 사상에 동의한다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어 있음을 경험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역시 쉐넌이 쓰고, 오방식 교수가 옮긴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은성, 2005)을 소개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국내에 번역된 토마스 머튼의 또 다른 전기로는 《지혜로운 삶: 토마스 머튼의 생애(Living with Wisdom: A Life of Thomas Merton)》(분도, 1994)가 있습니다. 이 책도 머튼과 직접 편지를 주고 받던 평화운동가 짐 포리스트(Jamse H. Forest)가 쓴 훌륭한 전기이므로 머튼을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