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마주친 순간



길을 걷는데

봄햇살에 살랑이던 벚꽃들이

나를 빤히 쳐다 본다


당황스럽다


눈길을 피해 앞으로 걸어 갔더니

한두 송이도 아니고

나무마다 피어난 수백 수천의 꽃송이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하아, 곤혹스럽다


내 마음을 어찌 알고

말없이 쑤셔 넣은

내 낙망을 어찌 눈치 채고


서랍 깊숙이 넣어둔

내 일기장의 암호들을 읽었을까


갑자기 불어온 낯익은 바람이 

씨뿌리는 농부처럼

꽃잎들을 내게 날려 보낸다


2017. 4. 7.



'시와 수필 > 멸치 똥-습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련  (0) 2018.03.24
야간 기도 (Vigils)  (0) 2017.03.25
변두리 버스정류장  (0) 2017.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