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조가(弔歌)

 

모임이 있어 한 교회의 수양관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거기서 진행되는 장례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흰 색 가운을 입은 목사가 마당에 서자, 검은색 옷을 입은 여성들이 두 줄로 섰고, 그 가운데로 장의차에서 내린 유족들이 고인의 영정과 분골함을 안고 들어섰습니다. 조가가 시작되었고, 행렬은 집례자의 뒤를 따라 노래를 부르며 안치 장소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산속에 부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고인은 제가 전혀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아는 바가 없었고, 유족들 중에도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죽음과 그를 보내는 사람들의 장엄한 모습을 대하니, 제 마음 깊은 곳에서도 어디서 솟아나는지 알 수 없는 샘물처럼 슬픔이 솟아나왔습니다.

다음 날 새벽, 어둠 속에 앉아 있는데 전 날의 경험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한 편의 시가 생각났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사람은 아무도 자기가 전부인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전체의 한 부분일 뿐이니

만일 한 조각의 흙덩이가 바다에 쓸려 내려가면

유럽은 작아진다.

곶이 씻겨 내려가도 마찬가지며

당신의 친구 또는 당신 자신의 땅이 쓸려 내려가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의 죽음도 나를 줄어들게 하는 것이니, 그것은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 저 조종이 울리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우리에게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소설 제목으로 잘 알려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라는 구절은 원래 영국의 사제이자 시인인 존 던(John Donne: 1572~1631)이 쓴 시의 제목입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모든 사람은 섬과 같이 홀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대륙과 같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전 세계로 확장하면, 아무리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곧 나의 죽음이며, 내가 줄어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누구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조종을 울리는 지 알아보려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종은 나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헤밍웨이는 1937년 스페인의 내전 속에서 이데올로기를 위해 싸우다 죽어간 이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다루며, 존 던의 시를 자신의 소설 제목으로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전쟁으로 서로 싸우고 죽이는 우리 모두가 한 인류임을 말하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북한과 미국은 매우 거친 언어와 대량 살상무기로 서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고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대륙과 같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는 매일 한강대교를 지나다닙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전 날 서울 시내 교통사고 사망자와 부상자의 숫자를 표시하는 간판이 있습니다. 거의 매일 한두 명이 죽고, 백여 명이 다칩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서 각종 사고와 재난으로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소식을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죽음의 소식은 우리 가까이 있지만, 우리는 너무 흔한죽음에 무뎌져서 단지 그 죽음을 숫자로만 간주하는 것은 아닐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죽음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면, 생명도 소중히 여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죽음이 소중한 이유는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윤동주 시인의 노래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살아있는 사람도, 죽어가는 사람도, 죽은 사람도 모두 나의 일부입니다. 나를 위한 조가는 오늘도 울리고 있습니다.

Magazine Hub 54 (2017년 11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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