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이랑 눈이랑 아침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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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현실이자 환상입니다. 세상을 온통 새하얗게 뒤덮는 눈은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워야 하는 이들에게는 고달픈 현실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이나 연인들에게는 평소 경험하지 못하는 환상의 세계를 열어주지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 ‘눈이라는 현실’과 씨름해야 하는 분들이 있다할지라도, 이 글에서는 잠시 저와 함께 눈발이 열어 놓는 환상의 세계로 발을 들여 놓으시기를 초대합니다. 고진하 시인의 〈아침 산맥〉이라는 문을 통해서 말입니다.
아침 산맥
흰 눈발을 짚삿갓처럼 쓴 첩첩한 봉우리들을 거느린, 아침 산맥의 굽이치는 띠가 눈부시게 밝다.
저 흰 밝음을 가슴 깊이 들이마시면 누군들 거듭 태어나지 않으랴.
눈보라 몹시 치던 날, 오죽헌에서 본, 서걱이는 오죽(烏竹)들에 둘러싸인 신사임당의 자수 병풍 속의 투명한 벌레들도 기어이 병풍을 뚫고 저 아침 산맥 속으로 날아가, 어린 연둣빛 봄을 예비할 것만 같다.
이 시를 쓴 고진하 시인은 강원도 산골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산골에 사는 사람에게 눈이 늘 낭만적인 대상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느 겨울 아침,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그는 눈 덮인 산맥을 보게 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처음 보는 장면은 아니었겠지요. 그런데 그날따라 “흰 눈발을 짚삿갓처럼 쓴”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산맥이 그에게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아침 산맥의 굽이치는 띠”라는 표현에는 눈 덮인 산맥이 단지 정적인 풍경화가 아니라 마치 굽이치는 강물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굽이치는 것은 산등성이와 그 위를 덮고 있는 새햐얀 눈이 함께 만들어 내는 “띠”입니다. 거기에다 아침 햇살이 찬란히 내리쬐며 이 굽이치는 “띠”에 눈부신 생명력을 불어 넣습니다. 곧, 이 시에서 묘사하는 눈부시게 밝은 “띠”는 ‘산등성이’와 ‘눈’과 ‘아침 햇살’이 함께 만들어 내는 신비한 장면입니다.
아마도 시인은 이와 같이 눈부신 산맥을 보고, 산속의 신선한 아침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자신의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는 경험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그는 2연에서 그러한 새로움을 거듭남의 경험에 비유합니다. “저 흰 밝음을 가슴 깊이 들이마시면 누군들 거듭 태어나지 않으랴.” 잘 알려진 것처럼 ‘거듭난다’는 표현은 기독교에서 주로 쓰는 말인데, 예수는 거듭난 사람이라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요한복음 3장 3절). 이 때 하나님 나라는 현실을 초월하면서도, 동시에 현실 속에 내재하는 신비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아침 산맥〉에서도 거듭남의 경험이 묘사된 2연에 이어, 3연에서는 현실을 초월하면서도 현실 속에 내재된 신비한 세계가 나타납니다.
3연에서 시적 화자는 기억을 통해 과거로 돌아갑니다.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던 날, 강릉 오죽헌에서 본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를 기억을 통해 현실로 불러냅니다. 이 그림 속에 담긴 풀과 벌레들이 얼마나 사실적이었는지, 그림을 여름 볕에 말리기 위해 마당에 내어 놓자 닭이 와서 살아 있는 벌레인 줄 알고 그림을 쪼았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지요. 시인은 이처럼 따뜻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그림 속의 세계를 강조하기 위해 그와는 대조되는 배경을 그려 놓고 있습니다. 오죽(烏竹)은 줄기가 검은 대나무입니다.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치는 날, 검은 색의 대나무가 바람에 서걱거리는 을씨년스러운 장면은 신사임당의 그림 속의 장면, 곧 따뜻한 볕 아래의 풀과 벌레의 모습과는 매우 대조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이와 같이 밝고 따스한 그림 속의 세계를 시적 상상 속에서 그림 밖의 겨울로 불러냅니다. 그림 속의 “투명한 벌레들도 기어이 병풍을 뚫고 저 아침 산맥 속으로 날아가, 어린 연둣빛 봄을 예비할 것만 같다.”는 상상력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림 속의 사실 같은 가상의 세계가, 상상력을 통해서 현실 속으로 나와 현실을 환상의 세계로 바꾸어 놓습니다. 마치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눈이 세상을 환상 속의 공간으로 만든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시적 상상력은 우리로 하여금 눈 덮인 아침 산맥을 보고서 새로 태어나는 경험을 하게도 하고, 눈 속에서 투명한 풀벌레가 연둣빛 봄을 준비하는 것도 보게 합니다. 꼭 시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이런 시적 상상력을 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이런 상상력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유난히도 더 춥게 느껴지는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시적 상상력이라는 안경을 쓰고 아침을 바라본다면, 밤사이 몰래 내린 눈 속에서 새 봄이 언 손을 호호 불다가 나를 발견하고서 “안녕!”이라고 손을 흔드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Magazine Hub 57 (2018년 1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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