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8-30장 | 형식과 지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28장에서 30장까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기업을 분배받고 살아갈 때에 지켜야할 제사와 절기와 서원에 대한 규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28장과 29장에는 ‘상번제’, 곧 날마다 바치는 번제에 대한 규정으부터 시작하여, 안식일, 월삭(초하루), 유월절, 칠칠철, 나팔절, 대속죄일, 그리고 장막절에 대한 자세한 규정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어쩌면 어떤 분들은 이러한 규정들을 읽으며 '굳이 이렇게까지 까다롭고 세세하게 원칙을 정해서 지킬 필요가 있을까? 형식은 좀 자유롭고 융통성 있게 하고, 대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제사(예배) 드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의 최초 청취자(독자)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세세한 규정을 주셨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여 년 간의 광야 생활을 끝내고,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가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나 민족들과 달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가장 중심이 되는 예배 공동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각종 제사들과 절기는 새롭게 세워질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와 나라의 기초이자 뼈대였습니다. 한 공동체(또는 국가)의 기초가 튼튼하면 그 공동체(또는 국가)는 든든히 서서 평안 가운데 오랫동안 지속되겠지만, 반대로 그 기초가 부실하면 금방 흔들리고,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무너질 것이 눈앞에 불을보듯 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 또는 국가의 기초를 굳건하게 하고, 뼈대를 튼튼히 세우시기 위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제사와 절기에 대한 규정들을 주신 것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한글을 배울 때에 처음에는 네모 칸이 있는 공책에 점선을 따라 기역, 니은, 디귿을 그리며 글자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글자를 쓰는 것이 익숙해지면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여 글씨를 흘려 쓰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자기 마음대로 쓰면 글씨를 제대로 배울 수가 없지요. 태권도나 테니스나 스키 등의 운동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기본 자세를 제대로 배워야 나중에 기본 자세를 응용하여 수준 높은 플레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해진 규정들을 하나하나 잘 따라 성실하게 공예배를 배우고 드려야 나아가 삶의 예배도 제대로 드릴 수 있지요.) 실제로 우리는 성경을 계속해서 읽어나가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와 절기를 정해진 규정대로 충실하게 드렸을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평안하였지만, 제사와 절기를 소홀히 여겼을 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나라도 위기에 빠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기록된 제사와 절기에 대한 규정들은 규정 그 자체를 지키는 데에 목적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제사와 절기에 대한 규정들을 지킴으로써 예배자로서, 또는 예배 공동체로서의 내적 마음과 외적 삶이 형성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이 전도된 경우를 우리는 신약성경의 바리새인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제사와 절기, 그리고 십일조와 금식 등의 외적 형식은 철저히 지켰지만, 내적 마음을 제대로 형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회칠한 무덤”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형식을 지키되 형식 그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주님을 예배하는 것 그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다음으로 민수기 30장에는 서원에 대한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여인들의 경우 서원을 하더라도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가, 결혼한 후에는 그 남편이 허락하지 않으면 서원의 효력이 발휘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시 가부장적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규정이므로, 오늘날 동일하게 남자와 여자의 관계 속에서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 성숙한 사람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야할 필요까지도 무효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굳이 경조사나, 이사나, 질병 등과 같은 특별한 일이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영적으로 진보하고, 더욱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갔던 것처럼, 각자가 속한 교구의 목회자들을 찾아가 지도와 도움을 받으시길 권합니다(요 3:1-21).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교독하며, 예배자로서의 우리 마음이 형성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2018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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