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집

 

 

요즘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즐겨 보는 영상 중 하나는 개구쟁이 스머프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 재미있게 보았던 만화인데, 아이도 그것을 보며 자라고 있다. 새로운 시즌들이 이어져 나오면서 스토리는 바뀌었지만, 그래도 캐릭터들은 친숙하다. 잠시 아이 옆에 앉아 TV를 보니 그 중에 익살이’(Jokey)가 눈에 들어온다. 익살이에게는 매일이 만우절이다. 그는 항상 뜬금없이 나타나 다른 스머프들에게 선물 상자를 내미는데, 그가 준 선물 상자는 뚜껑을 열면 언제나 하고 터져버린다. 그러면 처음에는 기쁨으로 선물을 받아 들었던 스머프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표정과 그을음만이 남는다. 이 장면을 보며 옆에 앉은 아이는 재미있다고 낄낄거리지만, 난 괜히 심각한 생각에 빠져든다.

 

최근에 지인들 중에서 자기 교회 목회자에 대한 깊은 실망을 토로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교회는 몇 년 전에 새로운 담임목회자를 청빙했다. 비슷비슷한 여러 후보들 중에서 하얀 피부에 외모도 보기 좋고, 말도 가장 잘하는 사람이 교인들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한두 해가 지나가면서 담임목사님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갔고, 교회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인들 중에는 새로운 목사님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깊은 실망감을 느끼고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와 나의 가족들은 교인들에게 선물과 같은 존재일까?’

 

아마 많은 교회들이 목회자를 청빙하며, 목회자와 그 가정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시는 선물과 같은 존재이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교회 강단에 세워놓으면 보기에 그럴듯하고, 듣기에도 만족스러운 상품을 고르듯이 목회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실상은 뚜껑을 열면 터지는 익살이의 선물 상자를 받은 것처럼 실망과 분노와 상처를 경험하는 이들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런 경우에 목회자와 그의 가정은 교인들에게 선물 상자가 아니라 폭탄 상자나 깜짝 상자(jack-in-the-box)로 여겨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개구쟁이 스머프를 본 이후 종종 이렇게 기도하게 된다. “주님, 저희 가정이 어느 곳에 있든지 그곳 사람들에게 선물과 같은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되도록 저희의 내면을 아름답게 빚어주십시오.”

 

선물’, 곧 하나님의 은총은 영성 훈련을 인도하다 보면 종종 언급하게 되는 단어이다. 며칠 전 가평의 필그림하우스에서도 그러했다. 영락교회의 3남선교회에서 외국인 사역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선교 프로그램이 그곳에서 있었는데, 그 중 영성 훈련 인도를 부탁받아 먼 길을 달려 찾아갔다. 배정된 시간이 늦은 저녁이고, 한 시간 남짓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성찰의 기도(examen)를 소개하였다.

 

성찰의 기도’, 또는 의식 성찰이라고 부르는 이 영성 훈련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내 삶에 어떻게 함께 하셨고, 나는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는 살펴보며 기도하는 시간이다.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긴 하루를 보내며 피곤한 몸으로 앉아 있는 이들에게 의식 성찰의 이론과 방법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직접 실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침묵 가운데, 각자 주님과 함께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선물들이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라고 안내한 후 종을 치고 나 역시 눈을 감고 앉았다.

 

그런데 성찰 가운데 예상치 못한 선물들이 나의 마음속에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가평으로 오는 길에 함께 차를 타고 왔던 영락수련원 봉사자들, 그리고 필그림하우스에 와서 저녁식사 시간 전후에 만나 함께 이야기 나누고 기도하였던 성도들의 얼굴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들이 내가 너에게 준 선물들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하였다.

 

사실 이전까지는 내가 목회자로서 교인들에게 선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며 지금까지 목회 여정 중에 만난 성도들을 떠올려보니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느 교회로 가든지 그곳에서 참 좋은 선물들을 만나게 해 주셨다. 내가 그분들에게 좋은 선물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분들은 내가 목회자로 형성되고, 존재하는(being) 데에 참 좋은 선물이었음이 분명하다. 나를 목회자로서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해준 분들만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해 주시고, 베풀어 주신 선물들이었다. 때로는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투덜이 스머프처럼 불평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러한 생각 끝에 실망 속에 있는 지인의 교회를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은 어려움을 겪는 그 교회도, 목회자와 교인이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가고, 좋은 선물임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러한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님의 선물들로 가득한 선물의 집과 같은 공동체일 것이다.

 


- 〈월간 문화목회〉39(2023년 9월호), 22-25에 게재된 글을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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