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예배를 마치고, 곧바로 인근 대학병원으로 갔다. 이제 살 날이 며칠이 남지 않았다는 한 청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어린 시절 교회를 다녔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났다고 했다. 그후 그는 '강요된 믿음'을 거부하며, 교회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이야기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목사님을 만나 보지 않겠냐는 가족들의 조심스러운 권유를 받아들였다.
가족들의 연락을 받고 내가 병실로 들어 갔을 때, 마침 그는 깨어 있었다. 이미 상당히 수척해진 그의 침대 옆에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예요. 전 ‘예수님은 왜 아기로 태어나셨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건장한 성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아기로 오셨을까?’ 하고 말이지요. 그것은 아마도 죽음을 이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라 생각해요.
죽음은 ‘우리 인생의 최후의 적’이라고 말해요. 그 죽음을 이기기 위해서 예수님은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셔야 했던 거지요. '출생'(出生)은 생명이 나타나는 것이니까요. 예수님은 그 생명으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지요. 죽음을 삼기키고 이기는 생명,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랍니다.”
아무런 표정 없이 내 말을 듣고 있던 그는 “예”라고 간단하게 답하였다. 그리고 어릴 때 배웠던 찬송가가 종종 마음속에서 생각이 났다고 하였다.
“네, 그러면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 부르시면 된답니다.”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병상세례를 줄 수 있는데, 받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는 아무런 주저 없이 "네"라고 대답하였다. 재차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세례의 의미를 간략히 설명한 뒤에 곧바로 준비해 간 세례기에 물을 담아 그의 옆에 섰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줄 알며, 스스로 구원을 얻지 못함을 인정하십니까?” “네, 인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성도님을 죄에서 구하여 주심을 믿고 의지하십니까?” “네, 의지합니다.”
비록 힘이 없어 소리는 작았지만, 그는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그 대답과 더불어 예수님께서 그의 안에 새 생명으로 태어나셨다. 성탄하셨다.
그렇게 세례를 주고, 기도를 마치고 나니, 그의 얼굴은 여전히 표정이 없었지만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날 밤, 아버지의 눈에서 흘러나왔던 것과 같은 눈물이었다.
내가 할 일이 끝났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병실을 나왔다.
“지금까지 형제님께서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 저는 알지 못해요. 그러나 이곳에서 가족분들과 함께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지금 이 순간 형제님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계신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어요. 수고하셨어요. 이제 편히 쉬세요.”
2023.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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