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를 안 하면 사진이 아니죠

 

파란 눈을 가진 젊은 수사님의 말에 단체사진을 찍던 일행은 크게 웃었다. 그리고 다 함께 ‘손 하트’를 하며 밝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 보았다.

 

영성 순례단과 함께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떼제(Taizé)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라 모라다(La Morada)[1]로 가서 우리의 도착을 알렸다. 그곳에서 환영팀으로 봉사하던 젊은이는 예약자 명부를 보더니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전화를 걸어 누군가를 불러내었다. 그러자 이내 안쪽에서 그가 성큼성큼 걸어 나와 내 앞에 섰다.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는 내가 영어로 “Hello!” 라고 인사하자, 그는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답했다. 

 

장 다니엘(Jean-Daniel). 슬로베니아 출신의 젊은이는 이전에 서울 화곡동에 있는 떼제 수사들의 공동체에서 얼마간 살았다고 했다. 그의 한국어는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한 내용을 소통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떼제에서의 소리풍경(soundscape)을 떠올려 보면 기억에 남는 소리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장 다니엘 수사님의 한국말이다.

 

사실 떼제에서 한국말을 들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곳에 한국인 수사님이 한 분 계셨지만 몇 해 전 한국으로 돌아오셔서 지금은 국내에서 활동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한열 수사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갖고 있던 차에 뜻밖에도 장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그저 몇 시간 머물다가 떠나가는 방문객들이었지만, 장은 한국에서 온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 주고, 시간을 내어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한국어로 말이다.

 

떼제에서 들은 한국말 중 우리 순례단에게 가장 놀라운 감동을 주었던 것은 아마도 낮기도 시간에 들은 성서 말씀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몇 가지 이유로 떼제에서 숙박을 하지는 않고 낮기도에만 참석하였다. 모두들 많은 기대를 가지고 기도회에 참석하였는데 생소한 언어들로 부르는 찬양은 곡조는 알아도 따라 부르기가 어려웠고, 그 뜻을 알 수도 없어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말씀 봉독 시간에 한국어가 들려왔다. 떼제에서는 예배나 기도회 중에 성서를 프랑스어, 독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반복해서 봉독하는데, 그날은 한국에서 방문객들이 왔다고 한국어로도 읽은 것이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장 수사님이었다.

 

비록 그의 한국어 발음은 내가 영어를 말할 때처럼 어색했으나 우리 일행 중에는 그 소리에 귀가 열리고,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왔다고 나누시는 분들이 여럿 있었다.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2:8) 이토록 감격스러운 일인지 예전에는 미쳐 알지 못했다. 오순절 날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는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2:4)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였지만, 이곳 떼제의 화해의 교회’(Eglise de la Réconciliation)에서는 손님들에게 환대를 베푸는 그들의 관습을 따라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방문객들의 언어로 말씀을 봉독하였다.

 

낮기도가 끝나고, 공동체 내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장 수사님과 미리 약속한 방에 모여 함께 둘러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우리에게 떼제 공동체를 간단히 소개해 주었고, 우리의 질문들에도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파란 눈의 수사님과 한국어로 나누는 대화는 따뜻하고 즐거웠으며, 감동과 배움이 있었다. 간담회를 마무리할 무렵 그는 우리에게 떼제 공동체가 처음 시작된 옛 교회’(the old church)로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새 그의 뒤를 따라 마을길을 걸어 오래된 작은 예배당으로 향했다.

 

 

그가 옛 교회라고 부른 곳은 성 막달라 마리아 교회’(Église de Sainte-Marie-Madeleine)라는 이름이 붙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매우 오래된 교회였다. 이 건물은 원래 약 10세기 말에 지어진 교회당을 개축한 것으로 그 터와 벽돌에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 오랜 세월에서 배어 나오는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순례단원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 사람 한 사람 교회 안으로 들어가 작은 예배당에 고요히 앉았다. 아무 소리도 없었고 오직 작은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오후의 햇볕만이 우리의 침묵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때 장 수사님은 내게 여기서 찬양을 불러도 괜찮아요.” 라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니, 그의 말은 내게 그대들의 언어로 찬양을 불러 보세요.” 라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떼제 찬양을 불렀다.

 

주여, 날 이끄시며, 어두운 길 밝혀 주소서
주여 불안한 맘에 평화 주소서

 

마치 깊은 우물 속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찬양 소리가 천장이 높은 예배당을 가득 채우며 울렸다. 이 찬양은 이번 영성 순례를 준비하며, 그리고 순례를 다니며 자주 부르던 곡이었다. 나 또한 여행 가이드도 없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많은 사람들을 인도해 오면서 이 찬양을 얼마나 많이 불렀던가? 반복해서 부르는 찬양 소리는 우리가 앉아 있는 교회 건물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울렸고, 그 울림과 함께 마음속의 어둠에도 빛이 스며들었다. 불안이 평안에 서서히 자리를 내어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떼제에서의 경험을 회상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소리풍경은 바로 이 옛 교회에서 불렀던 찬양 소리이다. 20여 명의 각기 다른 성품의 순례단원들이 함께 노래하며 체험한 일치감과 평화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물론 여행이 길어지며 때때로 그것이 흔들릴 때가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지난 호에 소리풍경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오늘날 우리의 교회들은 각각 어떠한 소리풍경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 어떻게 하면 소리풍경이 성도들의 영성을 깊게 하는 교회,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글을 마무리했는데,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답이다. 방문자, 또는 주변부에 있는 이들의 언어가 존중되고 들리는 공동체, 깊은 영성에서 나오는 평화와 일치의 노래가 울리는 교회, 그런 교회를 꿈꾸어 본다.

 


 

〈월간 문화목회〉46(2024년 4월호), 20-24에 게재된 글을 옮겨놓는다.



[1] 라 모라다(La Morada)는 떼제 공동체 내의 수사들의 생활 구역 입구에 위치한 건물로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필요를 돕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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