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1장 3-4절, 우리의 사귐 

 

 

본문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개역개정판 요1 1:3-4)

 

묵상 


  사도 요한이 보고 들은 바, 곧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관하여 증거한 이유는 바로 듣는 자들로 하여금, 우리(곧 믿는 이들의 공동체)와 사귐이 있게 하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이 사귐은 단순히 친목을 위한 그런 사귐이 아니다. 이 사귐은 ‘코이노니아’로서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이었다. 이러한 사귐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가능하다. 곧 복음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믿는 자들의 공동체,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는 것, 그것이 복음 전파의 목적이었다.

 

   이러한 말씀은 오늘날 교회의 책임이 전도가 그저 ‘전파(3절의 전함, anouncement)’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믿는 자들이 공동체와 교제하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데에 있다는 것을 우리로 깨닫게 한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 안에 복음을 듣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귐에 동참하게 하는 데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가? 불신자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에 등록하는 것만도 큰 기쁨이 된다. 그런데 새가족들이 그저 교회에 발걸음을 디디는 데에 끝나지 않고, 우리 안에서 교제하고, 또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자라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우리의 기쁨을 완성하게 해준다. (충만하게. complete - 4절). 이러한 기쁨의 완성 또는 충만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가?


주후 2005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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