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29. 수. (1)


새벽 일찍부터 집을 나서서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향했다. 베이브릿지(Bay Bridge)를 건너며 옆에 운전하고 있는 아내를 보니, 괜히 혼자 리트릿을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 국제 토마스 머튼 학회(International Thomas Merton Society)에서 주최하는 리트릿이 켄터키(Kentucky)에 위치한 겟세마니 수도원(Abbey of Gethsemani)에서 있다. 겟세마니 수도원은 내가 공부하는 머튼 수사가 1941년 12월 수도회에 입회한 이후에 1968년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기까지 평생을 살았던 곳이고, 이번 리트릿은 작년에 시카고에서 있었던 머튼 학회의 발제자들에게 주어지는 흔치 않는 기회였기 때문에 놓치기가 아까웠다. 그래서 리트릿에도 참가하고, 루이빌(Louisville) 벨러마인 대학(Bellarmine University)에 있는 머튼 센터에서 공부에 도움되는 미간행 자료들도 찾아볼 계획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그러나 내가 공부와 리트릿에 좀더 집중하고 경비를 줄이기 위해 아내는 혼자 집에 남아 있기로 했다. 이른 새벽에 나를 위해 운전하고 있는 아내의 옆모습을 보니, 이 먼 타국 땅에 혼자 남겨 놓고 가는 것이 미안하고 안스러웠다. 아내는 한국에서 하던 일도 중단하고 이렇게 먼 곳까지 함께 와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날 열심히 뒷바라지하고 있다. 


작년 여름, 새벽 비행기를 놓쳐서 열두 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던 적이 있다. 그 때의 끔찍한 기억 때문에 오늘은 필요 이상으로 빨리 나왔더니 여유롭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비행기는 동쪽으로 날아 올랐다. 어둑어둑하던 하늘이 이내 아침햇살로 가득해졌다. 비행기가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산맥을 넘어 캘리포니아를 벗어나자 네바다(Nevada)의 거친 사막이 나타났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황야이다. 하늘 위로 바람과 구름이 지나고, 간간히 비행기가 굉음을 울리며 사막의 침묵을 방해할 뿐, 아무도 찾지 않는 황량한 땅이다. 모래 위에 남겨진 구불구불한 흔적들은 과거에 강이나 내가 지나간 자취일까? 아니면 바람이 남겨놓은 발자국일까? 비행기 아래로 사막을 내려다 보며 4-5세기 마음의 순수함을 찾아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지의 사막으로 들어간 사막의 수사들을 생각했다. 목숨을 걸고 사막으로 들어간 그들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지금 사고가 나서 비행기가 사막에 떨어지고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이 황량한 사막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머튼은 사막이란 인간의 도시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외에 의지할 존재가 없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말이 실감이 나고도 남는다. 나중에 지도를 보고 안 사실이지만 사막은 캘리포니아 동남부터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콜로라도, 뉴 멕시코, 와이오밍 등의 주에 걸쳐서 펼쳐져 있는데 미국 서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두 시간 정도 사막 위를 날고 마침내 푸른 땅이 보이자 비행기가 곧 경유지인 덴버(Denver)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나온다.   


덴버에서 루이빌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까지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내가 싸준 볶음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는데도 아내는 일주일 동안 한식을 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잠을 줄여가며 정성껏 도시락을 싸주었다. 아내는 나 자신보다도 내 몸을 더 생각하고 아끼는 사람이다. 밥을 먹으며 성경을 펴서 창세기 28장을 읽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가는 길에 한 곳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천사들이 사다리를 타고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꿈을 꾸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함께 계실 것과 그가 안전하게 돌아오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야곱은 일어나서 주님이 정말 이곳에 계신데 그것을 몰랐다며 그곳을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고는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 그렇다. 모든 곳이 하나님의 집이다. 심지어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사막도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가장 계시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믿음으로 주님만을 바라보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다. 문득 신병훈련소에 갔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약 18년 전, 군복무를 위해 신병훈련소에 갔을 때에 '뭐 이런 곳이 다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사회와 분리된 담장 안의 세상은 자유와 인간 존중은 없고, 대신 명령과 통제 그리고 인간을 '전쟁물자'로 여기는 비인간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신병훈련소는 정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것만 같은 곳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결과만 간략하게 말한다면 그곳에서 나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경험하였다.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에서도 새벽의 차가운 어둠에서도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그렇게 보면 잠시 스쳐지나가는 여행객들로 가득 찬 이 낯선 공항 대합실도 하나님의 집이 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