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31. 금요일. (2)

 

루이빌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다 바드타운(Bardtown)이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니 한적한 시골길이 나타났다. 앞서가는 스쿨버스가 듬성듬성 떨어진 시골집들을 다니며 아이들을 한둘 씩 내려다 주는 모습이 참 정겨워 보인다. 네비게이션은 아직 더 가야한다고 말하는데길 왼쪽으로 갑자기 수도원이 등장했다마치 펜팔로 사귀던 친구를 처음 본 것 같이 반갑다겟세마니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성과 같다는 것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수도원에 들어가면 아내와 통화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차장에서 아내와 한참 통화를 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아내와 통화하기 위해 땀을 흘리며 어두운 주차장을 헤매고 다닐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수도원 입구에서 평화롭게 서있는 잔디와 나무들이 마음을 열게 해주었다바람에 나뭇가지가 끊임없이 흔들린다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있으니 겟세마니에는 돌들에도 침묵이 배어있다는 머튼의 글이 이해가 가는 듯하다대신 돌멩이들은 보이지 않고 나무들이 침묵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듯하다.

 


겟세마니, 그 나무


침묵 속에 뿌리내리고

오후의 햇살을 즐기던 나무들이

보채는 바람에 못이기는 척

잎사귀를 하나씩 내어준다.

그도 메이플 나무 그늘에 앉아 

슬며시 흙 속에 발을 담군다.

발가락 사이를 지나는 시원한 침묵에

그의 발가락이 자꾸만 꼼지락거린다.


리트릿 하우스 입구를 찾지 못해 ’ 헤매었다바쁜 마음도 몰라주고 발은 자꾸만 헤매는 것이 내 삶에서 흔한 일이다. 다행히도 루이빌에 사는 필름 메이커라고 자신을 소개한 모건(Morgan)의 도움으로 리트릿 하우스 입구를 찾았다. 그는 이곳에 몇 번 와 본 듯 하다. 동네 아저씨처럼 마음씨 좋게 생긴 수사님이 리셉션 데스크에 앉아 있다나를 보더니 내 이름을 묻지도 않고 리트릿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아낸다그리고 한국에서 왔냐고 묻는다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 온단다이곳을 방문한 한국인들 중 두 명 정도는 누구인지 알 듯하다몇 명 있을 것이란 생각은 했는데많이 온다고 하니 의외다.



방에 도착해보니 작지만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욕실과 샤워부스도 딸려있고침대도 매트리스가 있다에어컨도 시원하게 나온다. 머튼이 쓴 자서전 《칠층산》에서는 수사들은 딱딱한 나무판자 위에 짚을 깔고 잔다고 하는데(아마 머튼이 살 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 여러가지가 바뀌었을 것이다.)방문객들에게는 엄격한 수행을 요구하지는 않는 것 같다이곳에 오는 방문객들은 그저 방문객들이다평생을 수도원 안에서 살고 죽기로 헌신한 수사들과는 다르다대부분이 그냥 며칠 이곳에서 쉬다가 적당히 기도의 분위기를 살짝 맛보고 떠나는 사람들이다개신교적 표현으로 그렇게만 해도 은혜를 받은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처음에 수도원 입구의 “Abbey of Gethemani”라는  표지석을 발견했을 때에 가장 먼저 저 멋진 돌을 사진으로 찍어 가고 싶다는 충동을 받았다그리고 짐을 풀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도 사진기를 들고 나가 이곳저곳을 찍어댄 것이다사진을 찍으며 내가 관광을 온 것인지리트릿을 온 것인지 스스로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빨리 사진을 찍어 버리고, 모드를 관광객에서 리트릿턴트로 바꾸자고 생각했다.

 

벧엘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하란으로 향했고.

요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다시스로 향했다.

머튼은 세상의 번잡함과 사악함을 피해 겟세마니로 왔다.

나는 무엇을 피해 이곳에 왔는가?

하늘과 땅 사이에 사다리가 세워진 이곳에서

피하려고 한 그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



저녁기도(Vespers)에 참가하는 것으로 리트릿의 공식 일정이 시작되었다사진으로만 보던 그곳, 수도원 교회 뒤쪽의 방문객들을 위해 분리된 공간에 앉았다. 수도자들이 수도원 담장에 갇힌 것일까? 내가 세상에 갇힌 것일까? 교회 천장이 꽤 높다. 그러나 화려한 대신에 트라피스트의 정신에 따라 매우 단순한 형태로 리모델링된 것이라고 한다. 수사들이 가대(歌臺)에 앉아 노래를 시작한다. 침묵을 열고 나오는 그레고리안 찬트(Gregorian Chant)는 매우 경건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다들 연세가 많으셔서 그럴까? 랩처럼 이어지는 노래가 박자는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공동체 생활이라는 것이 그럴 것이다. 다들 약속된 하나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고, 정해진 공통의 리듬에 따라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것이 획일적으로 통일된 집단이 아니라, 각자의 형편에 따라 조금씩 박자와 음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바로 이어지는 저녁식사. 빵과 샐러드와 스프가 준비되어 있다. 평소처럼 샐러드에 드레싱을 뿌리다가 이렇게 먹는 것은 수도원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과한 생각인 것 같지만, 왠지 수도원에서는 혀를 즐겁게 하는 드레싱 없이 소박하게 야채를 있는 그대로 먹어야 될 것만 같다고기도 없고 특별한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고요한 정원으로 향한 창 앞에서 하는 침묵의 식사는 영혼을 매우 살찌게 하는 것 같다그래도 집을 떠나온 후 처음으로 제대로 하는 식사이다음식을 많이 가져온 것도 아닌데 내가 탐욕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이 된다. 수도원의 침묵 속에서는 나의 사소한 생각, 작은 행동 하나도 세심하게 돌아보게 된다. 


수도원의 식사


투명한 유리창 

너머의 고요한 정원.

소박한 나무 식탁 

위의 빵 한 조각.

달콤한 침묵

으로 드레싱한 샐러드.

영혼 깊은 배고픔

이 그릇 위에서 달그락.

비어가는 그릇

과 함께 비워지는

머릿속의 수다.

 

식사 후 방문객책임자(Guestmaster)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고, 이어서 머튼 학회 리트릿 참가자 모임이 따로 열렸다. 모든 참가자들의 간단한 자기소개가 있었는데, 낮에 리셉션 데스크에 있던 수사님이 내 이름을 쉽게 찾아낸 이유를 알 것 같다동양인은 나뿐이다그리고 대부분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이다이후 겟세마네 수도원과는 어울리지 않게 유대교의 안식일 기도(Sabbath Prayer)가 진행되었다참가자 중에 에드워드 카프란(Edward Kaplan)이라는 유대인 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금요일 저녁 안식일을 시작하는 유대인 식사 전의 기도를 인도하였다색다른 경험이었다노래와 주기적인 기도가 삶의 리듬를 형성하는 유대교의 삶이 수도원의 삶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문에 리트릿 프로그램에 이 순서가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앞줄에 앉아 있다가 엉겁결에 유대인들의 모자인 키파(kippah)를 얻었다모임이 끝난 후 서로 반가워하며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소외감을 맛본다. 언어의 문제도 있지만, 소심한 성격 탓이기도 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주삣거리다가 도망치듯 주차장으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