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31. 금요일. (1)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서둘러 호텔을 나왔다무엇이 마음을 이리 보채는지 모르겠다오늘은 헤매지 않고 벨러마인 대학교에 도착했다. 토마스 머튼 센터에서 논문을 두 편 요청해서 읽었다사실은 꼭 이곳이 아니더라도 학교 도서관 저널 섹션을 뒤지면 구할 수 있는 글들인데딱히 다른 볼 것이 생각나지 않아서 공부하는 셈 치고 읽었다수도원에서의 환대(hospitality)와 공동(cenobitic) 생활에 대한 글들인데, 공부에도 도움이 되고 오늘 겟세마네 수도원에서의 리트릿을 위한 사전학습으로도 좋은 듯하다. 


열람실의 테이블에 혼자 앉아 고요를 즐기고 있는데, 조금 뒤 한 젊은 여성이 센터장 피어슨 박사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온다. 그녀도 센터에 들렸다가 오늘 있을 리트릿에 참가하려나보다. 그런데 얼굴과 목소리가 낯익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작년 여름 시카고의 머튼 학회에서 만난 나탈리(Natalie)이다그때 내가 공부하는 학교의 석사과정에 입학할 예정이라고 했는데지난 1년 동안 버클리에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다시 이 먼 곳루이빌에서 만났다재미있다.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져가던 이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다. 이렇게 머튼이라는 인물은 죽어서도 사람들을 이어준다. 심지어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말이다. 토마스 머튼, 머튼 센터, 겟세마니 수도원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길이 만나는 넓은 광장이다.


점심 시간을 조금 넘긴 후, 겟세마니 수도원으로 옮겨 가기 위해 머튼 센터에 작별을 고했다아마 이것이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지 않을까여행 경비를 아끼기 주차장에서 머핀 하나와 사과 하나그리고 과자 조금으로 점심을 때우고 루이빌을 떠나 수도원이 위치한 뉴 헤이븐(New Haven)으로 차를 몰았다약 한 시간의 거리평소 집에서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갈 때 하듯이 라디오를 크게 틀었다귀를 영어에 좀 더 익숙하게 하기 위해이다. 음악보다 말이 많이 나오는 채널을 찾았다수도원에 가서 리트릿 참가자들과 며칠 동안 영어로 대화해야하는 것이 좀 부담이 되었다정신이 산만했다갑자기 침묵을 수행하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가면서 영어로 말하고 들을 것을 준비하는 것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서 라디오를 끄고 묵상하며 가기로 했다경치가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