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적형성 과정:

그대를 찾아 어둔 밤으로


나는 십자가의 성 요한과는 아주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150cm의 단신의 갈멜수도회 수사이었지만, 나는 186cm의 큰 키를 가진 개혁교회 전도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에 공감이 느껴지는 것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영성형성 과정 가운데서, 나를 형성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검소함의 습관

나는 1974년 초여름, 해운대의 철길을 끼고 있는 가난한 동네의 셋방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제시대와 해방 직후라는 역사적 격동기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셔서,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시기 위해 열심히 일하셨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매일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떨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특별히 어머니는 아주 검소한 분이셨는데, 작은 돈도 헛되이 쓰는 법이 없으셨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끼시면서도, 다른 이들을 위해서는 그리 인색하지 않으신 분이셨다. 그러한 삶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내면엔 탐욕으로 부를 쌓아가는 삶을 부정하고, 검소한 삶을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태도가 형성되어 갔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다녔던 비교적 보수적인 교단의 주일학교 교육과, 청교도적 신앙을 추구하던 목사님들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을 것이다.


진리를 찾아 헤매다

20대를 전후해서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단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문학’과 ‘개혁’이었다. ‘글쓰기’는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삶의 진리를 찾아 가는 수단이었다. 당시 내가 쓴 시 중에 “그대에게로 가는 여행”이라는 시가 있는데, 나는 그 시에서 “(그대가) 연필 끝에 새초롬히 섰소”라는 시구를 쓰며, “그대”로 상징되는 진리를 글쓰기를 통해서 발견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십자가의 성 요한의 표현에 따르면, 나는 아직 “어둔 밤”의 정화를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진리는 여전히 어둠 가운데 가려져 있었다.

또한 나는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구현되는 것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장차 그것을 위한 사회개혁운동에 내 삶을 투신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난 대학에서 문학과 개혁,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학신문사 기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1년간의 기자활동을 통해서는, 진리도 찾을 수 없었고, 세상의 개혁도 이루어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러할 수 있다는 확신도 사라져버렸다. 더욱더 이 시기의 나는 겨우 주일예배에 앉아 있을 뿐, 그것을 제외하고는 온통 학교일에 매달려 있어 하나님과의 관계도 메말라 부스러지는 흙과 같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난 모든 일을 내려놓고, 다시 하나님께 얼굴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말씀을 묵상을 하고, 기도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하나님은 그러한 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빛 되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통해 회심하게 하셨다. 그리고 막연한 진리를 향한 갈망을,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분명히 해 주셨다. 또한 세상을 향한 나의 알량한 정의감이 아닌, 하나님의 깊은 긍휼의 마음을 알게 하셨다. 그러고 약 6개월 후 나는 한 선교대회를 통해서 “십자가를 질 수 있나?”라는 주님의 물음에 “저의 심령 주의 것이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라고 응답하며 헌신하였다. 십자가를 내 삶의 핵심으로, 주님을 따르는 구체적인 삶의 방법으로 삼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일 뿐이었다.


신을 벗고 어둔 밤으로

고무된 마음으로 신학교에 가기로 결정하였지만, 처음부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신대원에 지원한 첫 해에는, 원하는 학교에 가기 위해 교단을 옮겨 추천을 받는 과정에서 거절을 당해야 했고, 열심히 준비하여 시험을 쳤던 둘째 해에는 넉넉하게 들어가리라는 기대와는 반대로 문턱에서 좌절해야만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나의 교만을 다루어 나가셨다. 나의 신앙적 열심과 지적 능력에 대한 자만을 하나님은 그렇게 꺾으셨다. 그래서 세 번째 시험을 보는 해,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내 발의 신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철저히 부인하고, 나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나서야, 나는 감사하게도 신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신대원에 들어간 첫 학기, 난 영성훈련을 만나게 되었다. 은성수도원에서의 주말경건훈련과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 따른 영성훈련은 내가 그렇게 찾고자 했던 “그대” 곧, 주님께로 나를 한 걸음, 한 걸음 안내해 주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죄 가운데서, 세상의 기쁨과 맛을 추구하는 나를 정화해나가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고 내면화함으로써, 내가 먼저 그리스도를 본받고, 또 다른 이들을 주님을 본받는 삶으로 인도하는(고전11:1) 소명으로 이끄셨다.

신대원 졸업 후 나는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을 실제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중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오의 햇빛 아래에서의 걸음이 아니라, 해질녘 들판 길처럼, 어둔 밤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간혹 나는 영적안일과 두려움 속에서 벗어버린 신발을 다시 주워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때마다 주님은 나를 깨우치시고, 다시 내가 신발을 벗어던지기를 기다리신다. 그리고, 아직도 세상의 기쁨과 맛으로 위안을 삼으려고 하는 나의 내면을, 하나님을 향해 불꽃같이 타오르는 열망으로 채우고자 하신다. 사실 요즘 내가 감당해야하는 삶의 모든 상황들은 나의 감각과 영혼을 능동적, 수동적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어둠을 뚫고 오는 빛을 그리고, “주님의 순전한 은혜”를 갈망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실로 요즘 나는, “모든 것을 맛보기에 다다르려면, 아무것도 맛보려 하지 말라 / 모든 것을 알기에 다다르려면,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말라”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가르침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 길을 따라 어둔 밤을 지나 한 걸음씩 걸어 나갈 때, 마침내 정오의 태양보다 눈부신 빛 아래서, 나는 “그대”를 만나게 될 것이다.


『목회와 신학』2006년 12월호

권혁일


십자가의 영적형성에 비추어 바라본 나의 영적형성에 대한 에세이. 

아래의 게시글 "십자가의 영적형성과정"과 함께 쓴 글.

 <목회와 신학> 웹페이지에 유해룡 교수님의 영적지도와 함께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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