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쓰며 영어로 번역한 윤동주 시인의 시를 올려둔다. 그가 한글로 시를 쓰던 때는 일제강점기 말이다. 일제가 우리 민족의 언어는 물론 정체성까지 말살하려고 하던 때에, 청년 윤동주는 '위험한 언어'로 '위험한 내용'의 시를 썼다. 그 언어의 아름다움과 내용의 깊이와 감동을 다른 나라 언어로 그대로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대한 흉내 내어보려고 하였다. 기존의 영어 번역들이 시인의 육필 원고가 아니라 편집자들에 의해 변형된 원고를 대본으로 하여서 아쉬운 점들이 많다. 그래서 품을 들여 다시 옮겼는데, 짧은 실력 탓에 어쩌면 더 못한 것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더 나은 표현이 있다면 제안해 주신다면 고마울 것이다. 


한글 시는 원래 시인이 썼던 언어의 음악적인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육필 원고에 있는 어휘를 그대로 두었다. 다만 띄어쓰기만 현대 맞춤법에 따라 고쳤다. 영어 번역은 영어로는 좀 어색한 표현이 되더라도, 가능한 원래의 의미를 그대로 전하기 위해 역동적 등가 번역(Dynamic Equivalence Translation)방식이 아닌 문자적 번역 방법을 택했다.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서울: 민음사, 제2판, 2002)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고, Kyung-nyun Kim Richards와 Steffen F. Richards가 번역한 Sky, Wind, and Stars (Fremont, CA: Asian Humanities Press, 2003)을 참조하였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어가선 가만히 드려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저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 가 드려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저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 9. 




Self-Portrait



Turning the spur of the mountain, I visit alone and calmly look into the solitary well at the edge of the rice field.


In the well, the moon is bright, the cloud flows by, the sky spreads out, a light blue wind blows, and autumn exists.


And a man is there.

Somehow, I feel hatred for the man so go back.


Thinking of the man on the way back, I feel sorry for him so go back and look in. The man remains as he was.


Again I feel hatred for the man so go back.

Thinking of the man on the way back, I become to miss him.


In the well, the moon is bright, the cloud flows by, the sky spreads out, a light blue wind blows, and autumn exists; and the man is there like reminiscence.


September 1939


Poem. Yun Dong-ju (1917-1045)

Trans. Hyeokil Kwon

'영성공부 > 윤동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번역] 윤동주의 〈봄〉  (0) 2016.05.20
[번역] 윤동주의 〈힌 그림자〉  (0) 2016.05.20
[번역] 윤동주의 〈위로〉  (0) 2016.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