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칼럼

2004년 9월 4일

 

더불어 사는 삶

 

월요일 아침, 잘 안 쓰는 물건들을 쑤셔 넣은 상자 속에서 등산화를 찾아내었다. 그 전날 교회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바라본 북한산이 아침부터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얼마만의 등산인가? 작년 제주선교 때 한라산을 오른 후 처음이다. 그러니까 일년만이다. 간단하게 배낭을 꾸려서 가벼운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집에서 걸어서 약20분쯤 가면 북한산이 있다는 건 알지만, 어디가 등산로인지도 알지 못하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어딘가에 분명 길이 있으리라…

산 입구에서 “군사지역이므로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을 만났다. 낭패다! 그런데 반대쪽으로 길이 나 있다. 한 번 올라가 보기로 했다. 중간에 역시 같은 표지판을 몇 번 만났지만, 피해서 조심조심 올라갔다. 이러다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온 길을 몇 번이고 돌아보며 기억하려 애썼다. 

아무도 없는 산 길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한 아주머니가 위험하게 경사가 심한 산비탈에서 도토리를 줍고 있다. 물통을 메고 지나가는 할아버지 한 분이 아시는 듯 인사말을 건넨다. “오늘은 많이 주웠어요?” 아주머니는 도토리로 제법 무거운 비닐봉지를 들어 보인다. 주택 인근 야산에서 이런 풍경을 보기는 어렵지 않다. 산뿐만 아니라, 대학 교정 등 도토리가 떨어지는 곳이면 어디선가 ‘봉다리’를 든 아저씨, 아줌마들이 나타나 도토리를 줍는다. 그래서 며칠 전에는 신문에 이런 보도가 나기도 했다. 사람들이 너무 도토리를 많이 주워서 다람쥐들이 겨울동안 먹을 양식이 부족하다는 것 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도토리들이 겨울을 위해 열심히 주워다 모아 놓은 것을 아예 통째로 훔쳐(?) 가기도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참 더불어 살 줄을 모른다. 사람에게 도토리는 꼭 없어도 되는 먹거리이지만, 다람쥐에게 도토리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식량이다. 자기가 열심히 모아놓은 식량을 모두 빼앗긴 다람쥐는 얼마나 허탈하고, 절망적일까? 왜 인간들은 자기만 알고 다른 생명체들의 소중함은 알지 못할까? 우리가 이렇게 환경을 파괴하면 나중에는 그 대가를 치루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할까? 

산길을 계속해서 오르다 보니 “생태계 보호를 위해 샛길 폐쇄”라고 쓰여진 간판도 여러 개 서 있다. 그리고 그 샛길에는 이름모를 새들이 (날지 않고) 뛰어다는 것이 보인다. 이것은 곧 사람의 발길이 닿으면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말이다. 그냥 곱게 산길을 다니면 그렇지 않겠지만, 많은 이들이 점잖게 지나지 않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연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우리 인간에게 이 자연계를 맡겨 주셨다. 우리에게 이 자연계를 잘 보존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러지 못했다. 죄로 오염된 인간은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모든 자연계를 더럽히고 파괴시켰다. 그래서 이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의 출입을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 나라는 어느 개인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주시고, 또 이들에게 자녀를 주시고 또 이웃을 주신 것은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기를 원하셔서 이다. 더불어 사는 것,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다른 이들,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도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피조물인 것을 기억할 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사랑하시지만, 나만 특별히 사랑하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왼발을 다쳐서 절룩거리며 걸으면 오른 발이 고생하게 된다. 이것이 한 몸이다. 한 몸은 함께 사는 것이다. 사소한 것부터 더불어 사는 삶을 연습하자. 이사야 35장에 나온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노는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회복을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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