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교회 「만남」 545호(2019년 6월)에 게재한 글을 옮겨놓는다. '영성과 성령'에 대한 글을 청탁받고, 영성에 있어서 성령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쉽게 설명하려고 했으나, 의도와 달리 너무 이론적이어서 쉽게 읽히지 않는 글이 되고 말았다.


 

영성은 하나님 체험,

사랑의 체험입니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곧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 가지 사실이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비슷하게 오늘날 한국에서 ‘영성(靈性)’이라는 말도 상황이나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영성을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로 정의하고 있는데, 그것은 ‘신령 영(靈)’과 ‘성품 성(性)’ 두 글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경우에 영성은 지성(知性)이나 감성(感性)과 더불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기능(faculty)의 하나라고 여겨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영성을 ‘사상’이나 ‘정신’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마르틴 루터의 영성’이라는 글을 읽어보면, 실제로는 그 내용은 마르틴 루터의 사상, 신념 등에 관한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영성학의 분야에서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단어는 이현령비현령 같은 용어가 아니라 특정한 개념을 가진 단어입니다. 물론, 학자들마다 ‘영성’을 정의하는 표현은 다양하지만 가장 일반적으로는 영어로 “lived experience of reality”라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말로는 ‘실재(實在)에 대한 생생한 체험’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으므로, 좀 더 자세히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생생한 체험(lived experience)’이란 독일어 ‘Erlebnis [에얼리프니스]’를 번역한 말로서 다이빙 선수가 물속에 풍덩 빠졌다가 나오는 것처럼 짧지만, 그 체험 속에 들어가는 사람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강력하고 생생한 체험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리얼리티(reality)’, 곧 ‘실재’라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고 경험하는 객관적 대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산들바람이 불어와 자신의 뺨에 부딪히는 것을 느낀다면, 이때 그가 인식(경험)하는 대상은 산들바람입니다. 또는 갓난아기가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것을 본다면, 이때 인식의 대상은 갓난아기지요.

 

그런데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존재를 변화시키는 생생한 체험(lived experience)을 일으키는 대상은 일반적인 사물이나 현상이라기보다는 궁극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이 궁극적인 실재(the ultimate reality)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이란 단순하게 말하면, 하나님 체험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현존(presence) 속으로 풍덩 빠지는 것과 같은 강력하고 생생한 체험이 영성학에서 말하는 기독교 영성입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 영성과 다른 종교 영성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원래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말은 기독교의 특수한 용어인데, 오늘날에는 일반명사가 되어서 다른 종교에서의 비일상적 체험을 뜻하기 위해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영성’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 ‘spirituality [스피리츄앨리티]’는 어원을 추적해보면 라틴어 ‘spiritualitas [스피리투알리타스]’에서 온 말로서,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바울 사도가 사용한 ‘영(pneuma)’ 또는 ‘영적(pneumatikos)’이라는 표현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영성은 ‘영(spirit)’이 그 핵심에 있습니다.

 

이때 ‘영’은 먼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Holy Spirit)을 지칭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영이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엡1:17 참조). 좀 더 정확하게 우리가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것은 곧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을 체험하는 것입니다(요14:16-17). 그래서 영성은 성령을 빼면 이른바 “앙꼬[팥소] 없는 찐빵”이 되고 맙니다.

 

또한 영성에서의 ‘영’은 인간의 ‘영’과도 관련됩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영으로서의 인간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8:16)라고 했는데, 아버지 하나님의 영과 우리의 영이 만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지식이 아니라 체험으로 알게 되지요.

 

요약하면, 영성, 곧 하나님 체험은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인식할 때 일어납니다. 이러한 하나님 인식은 나 자신의 외부에 있는 객관적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을 체험하는 것이며, 또한 내가 성령 안에 있음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배할 때, 말씀을 읽을 때, 기도할 때, 찬양할 때는 물론이고 우리가 자연 속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을 바라보고 느낄 때, 그리고 일상생활을 할 때도 이와 같은 신비한 하나님 체험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하나님 체험은 본질적으로 사랑의 체험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0-12).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지켜서 수평적으로 동료 인간들과 서로 사랑하면, 수직적으로도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복음서에 기록으로 남긴 요한 사도도 그의 편지에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는데, 이것을 인식하고 깨닫게 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라고 말합니다(요일3:24).

 

이런 점에서 영성 생활(spiritual life)이란 하나님을 체험하는 삶, 또는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삶은 다름 아닌 서로 사랑하는 삶이며,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영성의 정수(精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