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생일

 

 

빗속에서 생일을 맞으며
내가 생명을 빚졌음을 기억한다

핏덩이로 세상에 나와 탯줄이 끊긴 뒤
내 어머니와 나의 아내와
수많은 사람들이 해준 밥을 먹고
이제까지 살아왔다
그 밥을 위해 또 수많은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장에서, 마트에서 땀을 흘렸고
졸음과 싸우며 도로 위를 달렸으며
밭과 들에서 거친 땅을 팠고
바다 위에서 무서운 파도와 싸웠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그 누군가가 하늘에서 햇빛과 비를 내려
곡식이 자라고 열매 맺게 하였다

아직 어두운 새벽, 빗속에 생일을 맞으며
평생 값을 수 없는 엄청난 빚 속에
밥알별들로 이루어진 은하수의 빛 속에 있어
새삼 부끄러워하며 슬며시 운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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