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0편은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라는 호소로 시작됩니다. 1절은 우리가 읽는 개역개정 성경에서 과거형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이 부르짖음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역본에서 이 문장은 현재형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즉, 이 시편은 “주님, 제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습니다. 주여 저의 소리를 들으시고, 저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시옵소서!”라는 호소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깊은 곳”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시적인 표현으로서 어떤 구체적인 장소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이 시편으로 노래하는 사람들이 현재 처해있는 큰 역경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시편 기자들은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구덩이에 빠진 상태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깊은 구덩이에 빠지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3절에 의하면 죄악 때문인 것이 확실합니다. 사람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앞에서는 의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지요.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멸망할 운명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4절에 있는 것처럼 사유하심이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유(赦宥)하다’라는 단어는 용서할 ‘사’(赦)와 있을 ‘유’(宥)가 결합된 한자어로서 ‘죄를 용서하여 주다.’라는 뜻입니다. 곧,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 분이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5절과 6절을 보면, 시편 기자가 얼마나 간절히 주님을 기다리는지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장이 두 번 반복되고 있는데 반복은 강조를 의미하지요. 그러므로 산술적으로 이해하면 파숫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최소한 네 배는 더 간절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것보다도 훨씬 더 간절합니다. 그 기다림은 여기서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7절과 8절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여호와를 바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3절에서 언급된 죄악이 단순히 개인의 죄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죄악으로 확장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의 기자들은 공동체의 죄악으로 인해 현재 깊은 곳에 빠져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시편 130편은 앞뒤에 있는 시편들과 마찬가지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곧 이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명절에 여럿이 무리 지어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불렀던 찬송이자 기도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면서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죄악으로 인해 깊은 곳에 빠져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들을 용서해주시고, 인자를 베풀어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늘날의 교회는, 오늘 이 세계는 깊은 곳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또는 더 규모가 작지만, 내가 속한 공동체, 직장, 가정도 그러하지는 않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이 구덩이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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