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된장독

 

 

흔히 오늘날을지식의 홍수시대라고 말합니다. 불과 이십여 전만 해도 도서관과있는 서가에 꽂힌 백과사전이 권위를 자랑하며 지식의 왕좌에 폼을 잡고 앉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컴퓨터나 손에 있는 작은 스마트폰을 통해 필요한 많은 지식을 얻을 있습니다. 맛집과 같은 사소한 생활 정보는 물론이고, 아주 전문적인 지식까지도 간단한 검색을 통해서 쉽게 접할 없습니다. 그러나홍수라는 표현이 암시하는 것처럼 과도한 지식이 언제나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지식과 정보들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온라인 세계에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은 속에서 길을 잃거나 잘못된 길로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식과 정보들을 분별하여 사용할 있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구슬이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수많은 지식과 정보들 중에서 좋을 것들을 선별하여 꿰어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지혜는 어디서 찾을 있을까요?

 

강원도의 시골 마을에 사는 고진하 시인의 아내는 된장독 안에 들뜷는 구더기 떼로 골머리를 앓다가 어느날 시골 노파로부터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노파에게 들은 대로 착실하게 행합니다.

 

지루한 장마 끝,
된장독에 들끓는 구더기떼를 어쩌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아내는
건너 사는 노파에게 들었다며
담장에 올린
푸른 강낭콩잎을 따다
장독 속에 가지런히 깔아 덮었다
 
사흘쯤 지났을까
장독 뚜껑을 열어젖힌 아내의 눈빛을 따라
장독 속을 들여다보니
평평하게 깔린 콩잎 위엔
무수히 꼬물거리던 구더기떼가 기어올라와
마른 콩깍지처럼 몸을 꾸부려
뻗어 있었다
 
- 고진하, 푸른 콩잎〉 1, 2.

 

마치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청명한 가을이 오듯 신기하게도 강남콩잎 장으로 된장 속의 구더기들이 깨끗하게 제거되었습니다. 시인의 아내를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던 고민거리가 매우 시원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노파의 조언은생활 정보라기보다는생활의 지혜라고 있습니다. “ 건너 사는 노파라고만 나오는 늙은 여인은 비록 현대의 최신 지식과 정보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지는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삶에서 체득한, 또는 그렇게 체득한 누군가로부터 배운 생활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인의 아내는 시골 노파의 조언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행하듯 푸른 강낭콩잎을 따다가 장독 속에 가지런히 깔았습니다. 이렇게 지혜는듣는 만나야 실제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재미 있는 것은 1연에서 아내가 하는이상한일을 아마도 반신반의하며 옆에서 지켜보던 시인도 2연에서는아내의 눈빛을 따라장독 속을 들여다 본다는 점입니다. 어느덧 시인의 시선이 아내에게 동화되었습니다. 1, 2연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시인의 아내인데, 이렇게 시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이어지는 3, 4연에서 시인의 속마음이 노출됩니다.

 

오랫동안 곪은 종기를 말끔히 도려낸 듯
개운한 낯빛으로
죽은 구더기떼와 함께 콩잎을 걷어내는 아내에게
불쑥, 나는 묻고 싶었다
 
온통 곰팡이 꽃핀
눅눅한 마음 한구석
들끓는 욕망의 구더기떼를 걷어내는 데도
푸른 콩잎이 可하냐고

- 고진하, 푸른 콩잎〉 3, 4.

 

된장독에서 죽은 구더기 떼를 걷어내는 시인의 아내는 매우 개운한 얼굴이었습니다. 이때 시인도 함께 즐거워 했을 법도 하지만, 그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눈앞에 보이는 장독 속과는 달리 자신의 마음에는 여전히 곰팡이가 피어 있고, 욕망의 구더기 떼가 들끓고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인이 아내의 눈빛을 따라 들여다 장독 속은 다름 아닌 자신의 마음속임을 있습니다. 장마는 끝났지만, 여전히 눅눅한 마음으로 인해 썩고 있던 시인의 찜찜한 낯빛이 눈앞에 그려질 듯합니다. 

 

그렇게 장독대 앞에 서서 콩잎을 걷어내는 아내를 바라보던 시인의 마음에는불쑥질문이 하나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질문을  실제로 아내에게 던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문자적으로 보면 전혀 말이 안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고작 콩이파리 장으로 형체가 없는 마음속 구더기 떼를 걷어낼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시적 질문이 알려주는 것은 마음에서 구더기 떼처럼 들끓는 욕망을 제거하고파 하는 간절한 바람이 시인의 내면에서 불쑥 솟구쳐 올랐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생활의 지혜가 아니라 참된 지혜로서의푸른 콩잎 찾는 마음입니다. 생활의 지혜는 우리 외부의 사물이나 환경을 바꾸어 삶을 보다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참된 삶의 지혜는 타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외부에서 문제를 찾고 그것들을 탓하는 익숙해져 있지만, 시인은 외부의 사람들과 사물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내면의 욕망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욕망들로 인해 마음이 불편합니다. 실제로 자신이 사는 낡은 한옥을불편당이라 이름 짓고 사는 고진하 시인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불편함을 추구하는 기인(畸人)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불편함은 아마도 생활의 불편함 자체가 아니라 마음의 불편함이 아닐까합니다. 대체로 시인이란 이들은 내면을 썩게 만드는구더기떼 인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운 사람, 그래서 욕망들을 걷어내려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입니다. 고진하 시인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욕망의 구더기 떼들을 회피하고 마음속 깊은 곳으로 눌러 넣음으로써 일시적인 편안함을 누리려 하기보다 차라리 마음이 불편해지기를, 그래서 구더기들을 인식하고 그것들을 걷어낼 있는푸른 콩잎 찾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피상적인 거짓 평안이 아니라 불편함을 통한 참된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시인의 바람은 새롭게 생긴 것이라기보다는 원래 그의 내면 속에 깊이 잠재되어 있던 것인데, 일상의 사건을 통해서 그것이 의식의 영역으로 불쑥 솟구쳐 오른 것이라고 있습니다. 이처럼 참된 지혜를 추구하는 마음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깊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다만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요. 그러므로 잠시 시를 읽으며 우리 마음의 된장독을 깊이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어리석고 이상한 질문 불쑥 솟구쳐 오를지도 모르니까요.

 

Magazine Hub 114 (2022년 10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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