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수련원에서 제공하는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거룩한 독서'의 본문과 묵상 안내를 옮겨 놓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통해서 실제 안내를 받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와 실천 방법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공유하는 유투브 동영상의 설명란에 기록된  안내를 참조하십시오.


| 읽기 |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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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은 기존의 종교 교사들과는 다른 매우 새로운 유형의 선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에는 기존의 틀을 벗어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나 바리새인들과 비교하며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금식을 하지 않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선생인 예수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모세의 율법에서 금식은 속죄일에만 하면 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종교젹 열심이 있는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정규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였으며, 그 외에도 다른 금식들을 추가적으로 행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그런 종교적 형식을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한 행동은 종교적 정결과 경건의 모양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의 눈에는 매우 불경하고, 세속적인 모습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사람들의 예상을 초월하는 대답을 내놓으셨습니다. 그것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이 있을 때 금식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보통 금식은 참회나 애도의 기간 동안, 또는 큰 곤경을 만났을 때에 기도와 함께 시행되었습니다. 그런데 혼인잔치는 기쁨과 즐거움의 때이므로 금식을 할 이유도 없고, 금식을 하는 것이 오히려 주인에게 결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혼인 잔치의 신랑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계신 곳에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겼을 때, 곧 예수께서 체포되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는 금식하며, 애통해야 할 때입니다. 나는, 또는 우리는 지금 어떤 시기를 살고 있습니까? 신랑과 함께 있는 즐거움의 때입니까? 아니면, 신랑을 빼앗긴 때, 또는 신랑이 사라진 것과 같은 애통의 때입니까?   

계속해서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라고 촉구하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인 나에게 요청하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여쭈어 보고, 대화를 나누어 보십시오. 또는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중심으로 반복해서 읊조리고 묵상하며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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