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수련원에서 제공하는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거룩한 독서'의 본문과 묵상 안내를 옮겨 놓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통해서 실제 안내를 받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와 실천 방법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공유하는 유투브 동영상의 설명란에 기록된  안내를 참조하십시오.


| 읽기 |

 

10-12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33-34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 묵상하기 | 
 

 

비유는 원래 청중들이 가르침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입니다. 보통 유대 교사들은 자신이 말하는 요점을 보다 분명히 설명하기 위해서 비유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청중들 앞에서는 앞뒤 설명 없이 오직 비유들로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 비유들은 마치 수수께끼와 같이 들렸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해서,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조용히 주님을 찾아가 그 비유의 의미를 물어보았습니다. 그제서야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 의미를 해석하여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왜 그 비유의 의미를 많은 청중들 앞에서는 밝히 말씀하지 않으셨을까요?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사야 6장 9절과 10절을 인용하여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이 말씀은 문자적 의미 그대로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고 돌이켜 죄사함을 얻는 것을 예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것을 정말 원하시지요. 

 

다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셨음에도 그들이 믿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cf. 요 12:37-40). 예수님의 비유는 사람들이 육신의 눈은 뜨고 있고, 귀는 열려 있지만, 사실 그들의 마음의 눈은 멀고, 귀는 닫혀 있음을 분명히 폭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은 그냥 돌아서지 않았고, 주님을 찾아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말씀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말씀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열망이 있는 자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성경을 덮지 않고, 오히려 홀로 계신 주님께 나아가 그 의미를 여쭐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시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그분을 알고자 하는 간절하고 검질긴 열망이 있습니까? 아니라면, 무엇 때문입니까?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살펴보고, 이에 대해 주님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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