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수련원에서 제공하는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거룩한 독서'의 본문과 묵상 안내를 옮겨 놓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통해서 실제 안내를 받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와 실천 방법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공유하는 유투브 동영상의 설명란에 기록된  안내를 참조하십시오.

 


| 읽기 |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 묵상하기 | 
 

 

예수께서 귀신들에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 나오라” 명령하셨지만, 그 귀신들은 즉각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을 그냥 내버려두라고 간청하며 버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까지나 버틸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자신들을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였고, 이어서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해달라 간청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몸이 없는 귀신들은 숙주가 필요했고, 또한 그들은 지역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들은 ‘군대’라는 그들의 이름과도 잘 맞아 떨어집니다. 그들은 개체수만 많았던 것이 아니라 개별성없이 집단적으로 움직이고 활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귀신들의 간청을 들어주셔서 돼지떼에게로 들어가도록 허락신 이유는 사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는 있습니다. 먼저 유대 율법에서 돼지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부정한 돼지떼는 더러운 귀신들이 들어가기에 적합한 숙주입니다. 그리고 어떤 유대문헌에 의하면 귀신들은 물속에서는 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돼지들과 함께 물에 빠져서 소멸될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허용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그 수많은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간 후 그 지역에서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가서 괴롭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 허용하셨을 수도 있습니다(눅 11:24-26 참조). 어떤 경우든지 간에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이 땅에서 여전히 버티며 활동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 종국에는 예수님의 권세 아래 모두 소멸될 것임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꼭 귀신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세상의 어떤 정신은, 이성 없이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는 군대 귀신처럼 사람들의 사고 능력을 거세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개별성을 상실한 채 집단 속에서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욕구와 충동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에 사로잡혀 사고와 정서가 손상되고, 육체적 괴력밖에 남지 않았던 그 사람을 해방시켜주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그의 전인성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내 마음 안에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납니까?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중심으로 주님과 대화를 나누어 보십시오.

 

 

| 기도하기 | 

 

 

| 바라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