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수련원에서 제공하는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거룩한 독서'의 본문과 묵상 안내를 옮겨 놓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통해서 실제 안내를 받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와 실천 방법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공유하는 유투브 동영상의 설명란에 기록된  안내를 참조하십시오.


| 읽기 |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 묵상하기 | 
 

 

앞서 예수를 권위로 누르려고 왔다가 오히려 할 말이 궁색해져 돌아간 유대 지도자들은 이번에는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을 예수님께 보내었습니다. 로마의 앞잡이었던 헤롯 가문을 지지하는 헤롯당은 친로마적이지만,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반제국적이며 유대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로마 제국에 내야하는 세금에 대해 매우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을 것이지만 자신들의 공통의 적인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서로 손을 잡았습니다(막 3:6 참조). 예수님을 찾아간 그들은 먼저 몇 가지 말로 아부를 한 뒤, 세금에 관해 질문하고, 예수님꼐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명백하게 답변하라고 은근히 촉구하였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은 주후 6년 경에 제정된 인두세로서 식민지 백성들이 로마 제국에 내는 조공세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이 세금을 내야하는지 거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바리새인과 헤롯당원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이 질문을 가지고 왔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 한다고 대답하신다면, 주님은 유대인들로부터 인기가 떨어지거나 심지어 우상숭배자라 비판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세금을 내는 데 사용된 로마의 은전 데나리온에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형상과 더불어 그를 신성화하는 문구가 함께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께서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대답을 하신다면 주님은 로마의 통치에 반기를 드는 정치범으로 고발을 당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대답하기 어려운 교묘한 질문을 던졌으나, 주님은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답변으로 그들이 파놓은 함정을 넘어가셨습니다. 이때 “바치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돌려주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동사입니다. 2세기 후반과 3세기 초반에 살았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에 따르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을 말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곧, 주님의 대답은 그저 곤란한 질문을 피해가시기 위한 말재주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우리의 전 존재와 삶을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 옛날 유대인들 사이에서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여러가지 논란들이 있습니다. 그 논란들에 대한 명확한 답을 도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에게 새겨진 형상이 무엇인지 알고, 그 형상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과 그 대적자들 사이에서 오간 이 대화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옵니까? 마음을 진지하게 살펴보고, 마음속에 일어난 생각이나 감정을 주님께 말씀드리며,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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