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수련원에서 제공하는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거룩한 독서'의 본문과 묵상 안내를 옮겨 놓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통해서 실제 안내를 받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와 실천 방법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공유하는 유투브 동영상의 설명란에 기록된  안내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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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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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주님께서 무리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고 질문하셨는데, 그것은 당시 율법학자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가르치면서 그리스도가 다윗에게 종속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원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지만, 신구약 중간기부터는 종말론적인 구원자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히브리어 ‘그리스도’를 번역한 그리스어 ‘메시아’라는 말에는 그런 확장된 의미가 강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현재 전해지는 자료에 따르면,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른 것은 주전 1세기부터입니다. 그 무렵 기록된 〈솔로몬의 시편〉이라는 유대 문헌을 보면,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불의한 통치자들을 파괴하고, 이방인들을 몰아내어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왕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17:21-22). 이처럼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다윗의 자손’, 곧 군사적인 왕으로서의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부를 때에는 이렇게 침략자들과 싸워 승리하여 나라를 해방시킬 통치자에 대한 기대를 담아 불렀을 것이며, 예수님도 그것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질문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그 선입견과 잘못된 기대를 깨뜨리십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와 다윗의 관련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리스도는 다윗에게 종속되거나 다윗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다윗이 ‘주’라고 부르는 탁월한 존재임을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주님은 여기서 명확히 밝히시지는 않으셨지만, 이어지는 행적을 통해 당신께서는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정치적 혁명가나 군사적 승리자가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죽음을 이기시는 고난의 종이심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의 서기관, 곧 율법학자들의 가르침과 구별되는 탁월한 말씀이었고, 청중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즐겁게 들었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예수는) 진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교사”라고 기술하였는데, 이것은 오늘 본문에 기록된 청중들의 반응과 통합니다. 앞서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분노하며 돌아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 그리고 사두개인들과 달리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즐겁게 듣고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주님의 참 제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옵니까? 나에게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즐거움이 있습니까? 혹시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한 서기관들처럼 나의 좁은 이해 속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어도 참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는 날마다 나를 찾아오시고, 내게 말씀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나의 잘못된 기대와 이해로 왜곡된 메시아를 찾아 헤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은 내게 당신을 어떻게 알려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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