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만 너머로 하루가 저문다.

한 해가 뉘엿거리며 내 눈을 바라본다. 

해는 서서히 바다로 내려가는데

한 해의 엔딩 크레딧은 솟아 오른다.

그럼에도 얼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영화 관람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리되지 않은 것 같은 구름들

갑작스런 침입자가 남긴 비행운,

그리고 푸른 색과 붉은 색, 

흰색과 검은 색이 공존하는 하늘이 

어수선하고 복잡한 연말의 세상 같다. 


그럼에도 해는 자기 갈 길을 가고

나의 달력에서 한 해는 사라진다.

예전엔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첫날이 

참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한 해의 첫날과 마지막 날이 

바로 붙어 있는 것처럼 가까워졌다. 

언젠가는 인생의 첫날과 마지막 날이 

같은 날의 아침과 저녁 같은 때가 올 것이다.


2014. 12. 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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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연장과 출산률 저하로 인해 한국 사회는 앞으로 적은 수의 젊은 세대가 많은 수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는 예측이 나온지가 오래되었고, 그것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교회는 더욱 심하다. 개인적인 경험과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듣는 바로는 교회에서 젊은이들, 아이들이 급격히 줄어 들고 있다. 인구비례 불균형이 사회보다 교회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소수의 젊은 세대가 다수의 노년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때가 곧 오게 될 것이다. 지금 교회에서 주로 봉사하고 있는 헌신적인 장년 세대가 연세가 들어 더 이상 일하기 힘들어지면, 그나마 교회에 남아 있는 소수의 젊은 세대가 많은 일들을 도맡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연세 드신 분들은 젊은 이들이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을 보면, '보기가 좋다' 또는 '분위기가 젊어졌다'고 말씀하시며 뒷짐을 지고 흐뭇해 한다. 그리고 과거에 당신들이 어른들을 섬겼던 것처럼 젊은이들이 당신들을 섬겨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러기엔 오늘날의 많은 젊은 세대들은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믿음'이나 '헌신도'가 부족하다고 젊은 세대를 비난할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은 이미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직장이 없거나, 있어도 고용 불안과 낮은 임금으로 불안 가운데 사는 이들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충분히 쉬어도 모자랄' 주일에 교회에서까지 여러 가지 일들을 맡아서 봉사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다. 여유가 있어도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교회 조직'을 지탱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조직으로서의 교회'는 이미 젊은 세대로부터 존경과 신임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 깊이 퍼져 있는 개인주의, 이기주의 문화도 이에 한몫한다. 그러나 이 문화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장년, 노년 세대가 할 말은 별로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도 그 문화의 한 부분이며, 젊은 세대를 교육한 것은 지금의 장년, 노년 세대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도, 현재에도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늘 '일꾼'이 부족했(하)다. 일반적으로 섬기고자 하는 이보다는 섬김을 받고자 하는 이들을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일꾼, 특히 젊은 일꾼 부족 현상이 점점 심해질 것이다. 교회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의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아도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겆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자연히 소수의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부담이 갈 수 밖에 없다. 육체적인 봉사뿐만 아니라, 교회 재정에 있어서도 경제활동을 하는 소수의 젊은 세대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미래(또는 현재)를 충분히 준비/대처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나마 교회에 남아 있는 젊은 세대들 중에서도 일부는 교회를 떠나버리고 말 것이다. 부족한 일손을 메꾸기 위해 목회자들이 동분서주하다가는 정작 목회의 본질을 놓치거나 소홀히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과 깊은 관련이 없는 '이벤트'를 자제하고, 식당 봉사, 예배 파워포인트, 성탄 장식과 같이 기본적인 요소라고 여기지는 일들도 다시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주님을 대접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로 분주했던 마르다에게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10:42)고 말씀하신 주님의 뜻을 헤아려야 한다. 특히 건축과 같이 다음 세대에게 많은 부채를 물려주는 사업은 더더욱 지양해야 한다.


여러 사람들이 한국 교회가 많이 침체하고 있지만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가만히 기다린다고 그 '바닥'을 자연히 만나지 않는다. 경각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밑바닥은 없다. 끝없이 추락할 뿐이다. 그러므로 바닥을 기다리지 말고, 그 '바닥'의 시기를 지혜롭게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침체를 끝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2014.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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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 저녁기도



석양이 구름을 타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간

대학 캠퍼스 한가운데 높이 솟은 굴뚝에서는 

사람들의 깊은 한숨이 절박하게 피어 올라

하느님의 한숨인 구름들 속으로 스며든다

다섯 시를 알리는 종이 사람을 깨우고

주황색 구름이 검은 핏빛으로 짙어질 때

대학 정문 앞 자유와 저항의 거리에는

오늘도 두 눈에 초를 밝힌 학생들이

조각구름들처럼 하나둘 모여든다

헬기가 왕똥파리처럼 하늘을 맴돌고

눈물 없는 최루 가스가 눈물겹게 퍼지는

희망과 연대의 대강절 저녁기도 시간

"키리에 엘에이손"



2014.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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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7. 주일.


이틀째 창 밖은 헬기 소리로 아주 불안하다. 최근 퍼거슨(Ferguson, MO)과 뉴욕에서 비무장인 흑인들을 부당하게 살해한 경찰들에 대한 불기소 처분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곳 버클리에서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다. 자정이 가까운 이 시각까지도 경찰 헬기들이 UC버클리 캠퍼스와 다운타운 주위의 상공에서 시위대를 감시, 위협하고 있다. 뉴스와 SNS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면 "I Can't Breathe"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로 보이는 한 여성은 "Jesus Can't Breathe"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왔는데 매우 인상적이다. 헬기 소리를 들으며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코끝이 찡해진다. 이십 년 전 여름, 하늘을 점령한 경찰 헬기 소리와 쇠파이프가 땅을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보내었던 낮과 밤이 생각나기도 한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도 교회에서 "주 사랑이 나를 숨쉬게 해"라는 새 찬양을 불렀다. 교회 안에서는 이렇게 찬양을 하면서도, 실제로 교회 밖에서 약한 자들이 강한 자에 의해 숨막혀 죽어가는 이 세태에 대해 교회는 눈과 귀를 막고 모른 체 하는 것이 아닌가 반성을 해본다. 물론 청년부 소그룹 모임 시간에 이 사건의 불의함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거기에서 더 나가서 내가 실천해야 할 것이 더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일시적으로 체류하는 유학생의 신분이지만, 모든 구분을 다 떠나서 죽어간 이들과는 같은 인간이 아닌가?


이 시위는 최근 UC버클리 캠퍼스에서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여 일어나고 있는 Occupy Cal 시위와 연장선에 있다. 지난 수요일 시위 도중 스크럼을 짜고 있는 학생들을 경찰들이 곤봉을 휘두르며 해산시키려 하는 동영상이 퍼지고, 이에 대해 오늘 대학 총장이 경찰을 두둔하는 메시지를 발표함으로써 사람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UC버클리의 관료들은 과거 1960년대의 "Free Speech Movement"를 자랑스러운 저항의 역사로 내세우면서도, 현재의 저항을 폭력적으로 규정하며 과거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분리시키려고 한다. 현재 한국의 정치인들도 그렇지 않은가! 4.19.와 같은 과거의 민주화 운동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현재 민주를 주창하는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현재 시위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폭력적 저항을 하고 있지만, 일부는 이성을 잃고 주위 가게의 유리창을 깨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방금은 구급차의 사이렌까지도 울리는데 사람들이 더 다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아주 위태롭고 숨막히는 밤이다. 그리스도의 성탄이 곧 다가오는데, 숨을 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박탈당하고 살해당하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함께 하셔서 정말 그들이 숨을 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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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가는 기차



별로 가는 기차는

혼자서 타야 한다

시간 위를 달리는 

소리 없는 바퀴에 

말없이 귀를 열고

어둠 속에 공간이 사라지는

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바닥이 없는 마음에 

태초의 우주가 차오른다


가다가 간이역을 만나면

하루 정도 쉬어가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오래된 인연처럼 

한 상에 둘러 앉아 

한 그릇의 된장찌개에 

함께 숟가락을 넣는 것은

여행을 지속케 하는

거룩한 의식이다


별로 떠나는 기차가 

언제 어디서 출발하는지 

아는 이는  오직 

깊고 어둔 밤뿐이다

그래서 밤이 매일 우릴 찾아와

그윽한 눈으로 구애하나보다

못 본 체 말고 

못이기는 척

밤을 품고

불을 끄면

우리 각자는 별이 되고

함께 별자리가 된다



2014.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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