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친척 여동생이 집에서 하는 부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입은 얼마 안 되지만 아이들 간식값이라도 벌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부업을 하는 한 주부의 이야기가 나와서 유심히 보았다. 인형 옷 입히기, 초콜릿 포장하기 등 기계로 할 수 없는 단순 작업들을 숙련된 솜씨로 빠른 시간 내에 하는 모습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였다. 그러나 그러한 '달인'이라도 하루 종일 일해서 버는 수입은 약 2만원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하는 일의 단가가 너무 적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눗방울 통에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은 하나 당 3원이다. 손이 많이 가서 그나마 단가가 높은 큐브 조립도 개당 90원을 넘어 가지 않는다.


비단 부업만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 보면 노동의 가치가 너무나 저평가 되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업들은 수익이 발생하면 투자된 자본에게는 배분을 후하게 하지만, 직원들의 노동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하다. 노동에 대해 지불하는 대가는 사실 수익 배분이 아니라 비용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비용을 줄여서 최대한의 이윤을 얻어 그 수익을 자본에게 돌려주는 것이 우리가 속해 있는 자본주의의 원리이다. 이말은 곧,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사람이 흘리는 땀(노동)보다 자본이 더 크게 대우 받는다. 사람보다 자본이 더 가치를 인정 받는 슬픈 세상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더욱 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 임금격차가 매우 심하다고 한다. 자본과 힘을 가진 사람들이 힘이 없는 이들의 노동을 저평가하는 것은 노동착취에 다름아니다.


방송에 '부업의 달인'으로 나온 어머니는 열심히 해서 조그만 가게라도 내어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이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많다. '자기 가게'를 갖고 열심히 일하시는 소상공인들 중에도 자본의 물량 공세에 고전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결국은 구조의 문제이다. 사람의 노동을 저평가하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돈이 대접 받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대접 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허드렛 일', '단순 노동'을 포함하여 사람의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나아가 비록 물질적인 이윤을 창출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주부들이 가정에서 하는 노동의 가치도 인정하고 그에 대해서 '기본 소득'을 지급해야 한다. 자본소득을 제한하고 세금을 통한 부의 분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구조의 변화보다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 '욕심'이 변혁되지 않는다면 구조는 오히려 욕심의 '합법적인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201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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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4월 16일, <한국고등신학연구원 11주년 기념 & 제3차 KIATS Forum>에서 나눈 짧은 생각을 옮겨 놓는다. 아직 추상적이고 날 것 그대로인 모자란 생각이지만, 관심 있는 분들의 지혜와 협력으로 함께 발전시켜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공개한다.



제자들의 연대를 꿈꾸다

Back from Churchianity to Christianity



     제2세대 한국 선교사 브루스 헌트(Bruce Hunt: 1903-1992)는 1957년,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한 연설에서 선교의 사명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선교사들이 “한국에 진정한 기독교(Christianity)가 거의 없고, 대부분이 ‘교회교’(Churchianity)”다 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교회의 외형에 들러붙을 수 있는 여러 폐해에도 우리 주님의 목표는 여전히 ‘그분의 교회를 짓는 것’이었다”라고 변호합니다.[각주:1]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당시 복음주의권의 여러 선교사들이 영웅주의에 도취되어 교회 설립보다는 구제 프로젝트에 집착한 현상[각주:2]을 비판한 것이라는 점에서 정당하게 이해됩니다. 또한 신자들이 모여 교회를 조직하고, 예배당을 건축하며,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형태의 영성이 한국 기독교 형성과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헌트도 인정한 것처럼 한국 기독교에서 ‘교회중심주의’가 많은 폐해를 일으킨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이 ‘교회중심주의’라는 토양 위에서 싹이 트고 자라난 것들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개교회의 이익과 제도와 교리에 집착하는 경향은 교회 분열을 야기하였고, 나아가 교회를 세상과 분리시켜 버렸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견고한 담장 안쪽에 개교회 목회자들과 소수의 장로들이 다스리는 ‘자신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교인들을 분별력 없는 ‘눈 뜬 맹인’으로 만들어 한국 기독교의 수준을 저하시켰습니다. 또한 교회 건물을 잘 지어놓고 매력적인 프로그램, 곧 서비스를 공급하면 사람들이 모여 든다는 상업적, 소비주의적 사고는 ‘목회 성공’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의 야심과 결합하여 무리한 건축으로 교회를 부채 더미 위에 올리고, 교인들로 하여금 세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만 분주하게 봉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 우리 한국 교회가 개교회 중심의 ‘교회교(Churchianity)’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기독교(Christianity)’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도적 교회를 부정하거나 교회의 중요성을 부인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고,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어울리는 존엄을 제대로 구현해 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영성사에서 ‘제자도(discipleship)’, 곧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이들의 움직임은 매우 중요한 흐름을 형성해 왔습니다. 신약성서의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4세기의 사막 교부들, 6세기 성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547)와 그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자들, 13세기 성 프란치스코(Francis of Assisi: 1182-1226) 등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제자로서 살기를 추구하며 기독교에 역동성을 불어 넣어왔습니다. 한국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기철, 손양원, 이현필, 김교신, 방지일 등은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고자 했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가슴 아프게도 오늘 한국 교회 안에는 ‘제자 훈련’은 넘쳐 나지만 제자들은 희소하고,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가 말한 ‘값싼 은혜’를 즐기는 소비자 신자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식’ 위주의 기존의 제자훈련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을 주님의 제자로 온전히 형성해 내는 데에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교회와 교단을 초월한 ‘제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아닌, 실제적인 제자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복음적인 가치와 삶의 규칙을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고, 실천하는 사랑의 연대(solidarity)를 꿈꿉니다. 규칙(rule)은 영성 형성(spiritual formation)의 주요한 수단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규칙을 주셨습니다(마태복음 10:1-15). 성서와 기독교 영성 전통에 근거하고 오늘날의 시대에 적합한 규칙들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고, 또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개교회의 담장을 넘어 연대한다면, 한국 교회가 ‘교회중심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제자 공동체’로서의 생명력과 존엄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영화 "Son of God"

  1. 브루스 헌트, 《브루스 헌트》(서울: KIATS, 2013), 254-55. [본문으로]
  2. Ibid., 256-5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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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을 사랑하는 어머니



햇볕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하루 종일 햇볕을 따라다니신다


애기 손바닥 같은 아침 해가 

동쪽 베란다 한쪽 구석을 비추면

거실문을 열어 빼꼼히 내다보시고는

베란다로 나가 널어둔 빨래를 개신다


낮이 되어 높이 솟은 해가

더 이상 집 안에 들어 오지 않으면

머리를 곱게 빗고 밖으로 나가

햇볕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신다


저녁이 되어 지는 해가

서쪽 베란다에 들어올 때가 되면

달래가 든 봉다리를 손에 들고 들어와

한 줄기 석양이 조명처럼 비치는 부엌에서

보글보글 노래하듯 된장찌개를 끓이신다


밤이 되어 해가 세상에서 사라지면

어머니는 일찍 잠자리에 드신다

다음 날 늦잠을 자다가 

잠깐 들어왔다 물러가는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놓치면 안되겠기에


2015.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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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길목



오늘도 바람의 길목을 서성거려


아파트는 앞다투며 높아져만 가고

그 좁은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느라

우리 동네에서 바람이 가장 세찬 곳
한겨울에는 등을 펴고 걷기도 힘들어
억센 세상살이를 온몸으로 맛보는 황야

건물 사이로 뚫린 하늘을 올려다보면
무섭게 내달리는 황소바람에도
하늘의 풍차는 돌지 않고

내 머리만 핑그르르 도는 신비한 길목

끈질긴 욕심과 근심을 버리고
내가 바람이 되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바람의 길목
을 오늘도 몸을 움츠리고 서성거려


2015.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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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가정 예배 자료입니다. 원래 저희 가정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필요하신 분들은 파일을 내려 받으셔서 각 가정의 필요에 따라 수정하여 사용하셔도 됩니다. HWP 파일과 PDF 파일로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설날 가정 예배 자료 2.hwp          설날 가정 예배 자료 2.pdf




설날 추도 예식

 

 

1. 예배로의 부름 요한계시록 21:5-7/ 인도자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2.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모두 함께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아멘.

 

 

3. 찬송 563장 예수 사랑하심을 (1, 2) / 모두 함께

 

1.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2.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를 다 씻어

하늘 문을 여시고 들어가게 하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4. 성경봉독 창세기 319/ 맡은 이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5. 말씀 나눔 흙에서 흙으로, 흙에서 영원으로

 

    오늘(2015. 2. 18)은 설날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지만, 교회력으로 사순절(Lent)의 첫 번째 날이기도 합니다. 사순절(四旬節)은 한자로 넉 사()’열흘 순()’이 합쳐진 말로서 사십 일, 구체적으로 부활주일을 맞이하기 전 사십 일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현재 기록으로 남아 있는 바에 의하면 교회는 약 천오백 년 전부터 부활주일 전 사십 일을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로 삼아왔습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매우 엄숙하고 경건한 절기입니다. (그런데 매 주일은 작은 부활절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에 사십 일을 계산할 때는 주일을 제외합니다.) 그리고 이 사순절의 첫 날을 특별히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고 정하여 참회의 시기로 지켜왔습니다. 성경에서 보통 는 회개와 관련됩니다. 그래서 재의 수요일에는 이마에 재를 바르고 금식하며 자신의 죄를 성찰하고 참회하며 보냅니다. 오늘이 바로 그 재의 수요일입니다.

 

    이 '재의 수요일'에 가장 많이 선포되고 읽혀지는 말씀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인 창세기 319절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성경은 하나님이 흙에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을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7). , 사람은 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사람은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땅에 묻혀서 썩어 흙이 되든지, 불에 타서 재가 되든지, 인생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은 우리가 이와 같이 흙에 불과한 존재임을 다시 생각하는 날입니다. 잘났든지 못났든지, 많이 가졌든지 가진 것이 적든지, 건강하든지 병약하든지 간에 우리는 모두 흙입니다. 지금 유골함 속에 재로 남은 고인의 몸이, 그리고 무덤 속에서 썩어가는 많은 이들이 이 진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욕망의 충족을 추구하며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의 때가 오면 모든 비본질적인 것들은 연기처럼 날아가고, 흙과 재만 남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흙과 재에 불과한 존재이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절망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순절은 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은 늘 부활절과 함께 묶여 있습니다. 사순절은 부활절로 나아가는 사십 일간의 긴 여정입니다. 빛을 향해 나아가는 어두운 터널 속 여행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희망할 수 있습니다. 흙에서 흙으로 가는 인생에 절망하지 않고, 죽음 너머의 새로운 삶을 바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먼저 걸어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유골함 속의 재를 보거나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흙에 불과한 존재임을 다시 명심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높아진 마음과 헛된 것을 추구하는 마음을 회개합시다. 나아가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재가 되어 버린 우리를 다시 부활시켜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하실 것을 믿고 소망합시다.

 

    한 해의 시작인 이 설 명절에, 재의 수요일을 맞이하니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기억합시다.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흙으로서의 인간의 마지막이자, 흙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삶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사순절과 같이 어두운 시기가 지금 우리의 삶에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 끝에는 밝은 부활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새해를 맞으며 희망을 품어도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6. 나눔과 기도 / 모두 함께

올 한 해 우리가 품고 있는 새해의 소망을 함께 나누어 봅시다.

 

 

7. 찬송 563장 예수 사랑하심을 (3, 4) / 모두 함께

 

3.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4. 세상 사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하시고

세상 떠나 가는 날 천국 가게 하소서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8. 주기도 / 모두 함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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