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돈벌이 희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광장으로 관원들에게로 끌고 갔다. (사도행전 16:19 / 새번역)


그동안 귀신에 붙잡혀 지내던 여인이 바울을 통해서 자유를 얻었다! 여인과 함께 기뻐해야할 일이지 않는가? 정말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여인의 주인들은 이 사건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귀신들린 불쌍한 여종을 부려서 돈벌이를 하던 주인들은 자신들의 "돈벌이 희망"이 끊어진 것에 분노하고 바울과 실라를 모함하였다. 그들의 눈에 그 여인은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 아닌 '돈벌이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십대 초반, 신병훈련소에서 지낼 때에 군대에서는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한 생명'이라기보다는 '전쟁 물자'로 여겨진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매우 씁슬하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군대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업, 조직 등에서도 많은 듯하다. 당장 선거 때가 되면 국민을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하는 정치인부터 대부분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과 가치보다, 그 사람이 던질 '표'를 사랑하는 듯 보인다. 그러니까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서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공약도 마구 뱉어내고, 선거가 끝난 다음엔 화장실 다녀온 사람처럼 공약을 휴지처럼 내던져 버리는 것일 게다. 노동자들을 열악하고 위험한 근무 환경 속으로 밀어 놓고서도, 그들이 높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올리기를 요구하는 기업주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만들어 낼 물질적인 생산물 또는 효과에 관심을 가지는 고용인, 관리자, 지도자, 목회자 등은 귀신 들린 불쌍한 여종의 주인들과 같은 사람들, 곧 사람을 자유케 하는 복음을 거스르는 이들이다. 


형제, 자매,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 하나님이 보시듯 바라보는 눈이 내게 있는가? 나 역시 부끄러울 뿐이다.


201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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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변기에 앉아 한참 생각을 하고 나면
변기 속에 똥이 가득 차 있다
물을 내리면 시원하게 내려 가는 듯하더니
새로운 물과 함께 다시 똥이 차 있다
이상해서 다시 물을 내리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또 다시 똥이 또아리를 틀고 앉는다
슬퍼서 물을 연거푸 내리면

물이 다시 차오르고
변기 속에 턱을 괴고

내가 들어 앉아 있다


2014.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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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28. 금.




반가운 비가 내리는 날. 비가 잠깐 그친 틈을 타 아내와 함께 산책 겸 장보러 나갔다. 진열대 위의 야채와 과일의 빛깔이 더욱 싱그럽고 선명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에 비로소 깨달은 건데, 음식 재료는 모두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들이다. 내가 아는 한, 소금을 제외하고 돌이나 쇠같은 무생물을 재료로 음식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음식 준비를 위해서 요리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인 시간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생명이 담긴 재료로 생명을 들여 준비한 것이기에 그 음식이 먹는 사람의 생명이 되는 것이리라. 음식이란 생명이 깃든 경이로운 것이며, 요리란 생명으로 생명을 다루는 거룩한 작업이다. 이것을 이제서야 깨닫다니! 보통 나는 식사 준비와 설겆이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을 아주 아깝게 생각해왔는데, 반성해야겠다. 그리고 가족과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주부와 요리사는 참 거룩한 사람들임을 음식을 먹을 때마다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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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고, 먹을거리를 주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4장 17절 / 새번역)


메마른 대지에 비가 내린다. 시절을 따라 적절하게 비가 오고, 그 비가 곡식과 나무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할 때에는, 비란 그저 '자연적인 현상'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막상 가물어 땅이 메마르고, 인간의 어떤 지식과 과학으로도 비를 내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비란 단순히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신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인격적인 '자연 법칙'이 온 우주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신'이 비와 각종 자연 현상을 주관한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극심한 가뭄이 있는 곳에는 '현학적인' 무신론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리고 호렙산에서의 엘리야와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대결이 보여 주듯이, 비는 참 신과 거짓 신이 누구인지를 가려 준다(열왕기상 18장).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기 이전에도 하나님께서는 비와 땅의 열매를 통해서 당신을 나타내셨다고 말한다. 비는 하나님의 자기 증거(self-revelation)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비를 통해 당신 자신을 우리 삶에 현시하신다. 창 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내 삶에 생명을 주시고, 내 마음에 기쁨을 주시는 주님을 생각한다. 암울하고 힘겨운 날들이지만 비가 내리고 있다. 주님이 빗소리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들려 주고 계신다.


2014. 2. 26.

2014. 2. 21. 금.


결혼 10주년.

그녀도 열 살 짜리 아내가 되었고, 나도 열 살 짜리 남편이 되었다. 결혼을 하며 아내에게 "10년 후에는"이라는 말로 시작한 약속을 지켜주지 못 했다. 결혼 10주년이라고 변변한 선물도, 기념도 하지 못 하고 산책길 일로 사람들과 만나며 기념일을 그냥 보내 버렸다. 아내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나도 아내도 결혼 때에 비하면 10년 사이에 너무나 많이 늙었다. 아이가 생기지도 않고, 지금은 입양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적으로도 오히려 더 위축되는 듯하다. 내가 공부를 빨리 마치지 못 하여, 우리 부부가 다시 떨어져 살아야 하는 날이 다가 오고 있다. 그리고 결혼식을 올릴 때는 내 아버지가 십 년도 사시지 못하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혼 때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힘드고 암울한가? 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



2014. 2. 22. 토.


요즘 내 몸이 많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삼일마다 일어나는 두드러기는 이제 내 맘을 두렵게 한다. 약을 먹어야 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어젯밤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올 한 해는 건강한 남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극적인 음식을 줄이고, 운동을 더 많이 늘려야 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와 함께 요가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였다. 그리고 오후엔 운동 삼아 함께 산책도 하였다. 가능하면 매일매일 꾸준하게 이런 식으로 아내와 운동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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