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즐거운 독서(Joyful Reading)' 모임을 위한 책소개와 토론 질문입니다.




마음을 병들게 하는 독약

엔도오 슈우사꾸. 《바다와 독약》. 창비, 2014.


 

   소설 《바다와 독약》은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일본 큐우슈우 대학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다루는 것은 육체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입니다. 소설의 제목에 나오는 ‘독약’은 사람의 몸을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병들게 하는 독약입니다. 소설에 인용된 석가모니 이야기의 한 구절처럼(58),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의 주요 인물들인 의사, 간호사, 군의관들은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육체의 병보다 훨씬 더 심각한 마음의 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 마음의 병을 자세히 묘사하기 위하여 작가 엔도오 슈우사꾸는 특이하게도 여러 번 시점과 화자를 바꾸어 가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주요 인물들이 걸려 있는 마음의 병은 어떤 것일까요? 


(1) 체념

     먼저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체념’이라는 병에 걸려 있습니다.


“아무래도 좋다. 내가 해부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그 파르스름한 숯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토다의 담배 냄새 때문이었는지도. 이것이든 저것이든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생각하지 말자. 잠이나 자자. 생각해본들 별도리도 없다.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83)


비인도적인 생체해부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난 뒤, 스구로는 밤에 잠에서 깨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생각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의 양심이 울부짖는 파도소리와 함께 그에게 왜 해부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는지에 대해 질문했지만, 그는 숯불과 담배 냄새에 책임을 돌리다가 이내 생각하는 것조차 거부합니다. 어차피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세상이란 것이 그 핑계입니다. 이 일이 있기 전에도 스구로는 이와 비슷한 말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모두 죽어나가는 세상 아이가. 병원에서 죽지 않더라도 매일밤 공습으로 죽어가는 거야.”(46) 특히 그는 자신의 첫 환자였던 ‘아줌마’의 죽음 이후  “이제 오늘부터 전쟁도 일본도 자신도 모두가 될 대로 되라고 생각했”습니다.(79) 이런 체념은 간호사 우에다 노부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됩니다. 그녀는 자신이 간호사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의무 이상의 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무얼하더라도 저 어두운 바닷속으로 누구 할 것 없이 끌려들어가는 세상이라는 체념이 제 마음을 지배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라고 고백합니다.(106) 아이를 사산하고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우에다 노부는 세상에 대한 깊은 체념과 상처, 외로움 가운데서 아무런 희망 없이 살아갑니다. 스구로와 우에다 두 사람은 삶의 어느 순간에 경험한 실패나 상처로 인해서 깊은 체념에 빠진 경우입니다. 그러나 의학생 토다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역시 “될 대로 되라.”(76)고 말하며 세상의 풍조에 편승하여 살아가는 그이지만, 토다는 어떤 절망 때문이 아니라 양심의 문제 때문에 생체해부 실험에 참여하게 됩니다. 


(2) 마비된 양심

     어린 시절 토다는 눈치가 빠르고 처세술에 능한 아이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순진함과 영리함 사이에서 적당히 처신하고 연기하여 선생님의 칭찬을 독차지하였습니다. 심지어 적당히 허구를 가미한 비양심적인 글이 ‘양심적’이라는 이유로 선생님께 칭찬을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마비된 양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한 선생님의 ‘나비표본’을 훔친 후에 양심의 가책과 불안을 느꼈지만, 자기 대신 범인으로 지목된 아이가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영웅 대접 받는 것을 즐기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나는 자신을 양심이 마비된 남자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내게 양심의 가책이란 지금까지 쓴 대로 타인의 눈이나 사회의 벌에 대한 공포일  뿐이었다. 물론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누구라도 한 꺼풀만 벗기면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연의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벌을 받거나 사회의 비난을 받은 일은 없었다.(130)


‘타인의 눈’ 또는 ‘사회의 벌’에 대한 공포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양심의 가책’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수치심과 두려움일 뿐이지,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에 느끼는 양심의 가책이 아닙니다. 사전에서 양심(良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을 판단하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토다에게 있어서 옳고 그름의 기준은 ‘타인의 눈에 드러나는지의 여부’ 또는 ‘사회로부터 벌을 받는지의 여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아무리 도덕적으로 나쁜 일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사회로부터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토다는 자신이 저지른 일들이 추악하다고 생각하나 가책을 느끼지는 않았으며(135-136), 생체해부로 사람을 죽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나른함과 환멸을 느꼈습니다(157). 양심이 살아 있다면,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가책을 느끼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므로 토다는 자신이 양심이 마비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양심, 곧 선량한 마음이 마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중심인물은 아니지만, 개인의 승진, 학술적 목적, 호기심 등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는 하시모또 교수, 시바따 조교수, 군의관들도 양심이 마비된 사람들의 부류에 들어갑니다.



첫 번째 이야기 : 마음의 병과 독약


1. 마음의 병과 독약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체념’과 ‘양심의 마비’라는 심각한 마음의 병에 걸려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외에 이들이 걸린 마음의 병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마음을 병들게 한 독약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2. 신과 운명.

  아래는 이 책 86-87쪽에서 신과 운명에 대한 토다와 스구로의 대화입니다. 토다는 신은 운명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해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운명을 믿으십니까?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토다가 말하는 ‘운명’을 못 벗어난 걸까요, 아니면 안 벗어난 걸까요?


토다 : "신이란 게 진짜 있을까?", "뭐라 캐야 되노.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인간은 자신의 등을 떠미는 무언가로부터-운명이라 카나, 못 벗어난다 아이가. 그런 무언가로부터 해방해주는 걸 신이라 칸다면 말이다."

스구로 : "내는 인자 신이 있든 없든 상관 없다."

토다 : 그래도 니한테는 아지매가 일종의 신과 같은 존재였는지 모른다." 

스구로 : "어어." 


3. 바다

  이 소설에서 바다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장면마다 바다가 등장하는데 단 하나의 의미로만 해석할 수가 없는 듯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바다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작가는 바다를 통해서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걸까요? 또는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독자로서 여러분은 바다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두 번째 이야기 : 책과 나


1. 비정함

  이 소설에서 작가 엔도오 슈우사꾸는 토다의 입을 빌어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도 역시 나처럼 한 꺼풀을 벗기면 타인의 죽음이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한가? 약간의 나쁜 짓이라면 사회로부터 벌 받지 않는 이상 별다른 가책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오늘까지 살아왔는가? 그리고 어느 날 그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진 적이 있는가?


2. 체념

  혹시 여러분들도 이 책의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또는 다른) 체념을 경험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그 체념을 어떻게 다루시고 있습니까?


3. 해독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 외에 여러분들이 살면서 경험하고 보아온 ‘마음의 병’과 ‘독약’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작가가 되어 ‘바다와 독약’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쓴다면 어떤 병과 독약을 소재로 글을 쓰시겠습니까?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그 ‘독약들’에 대한 해독제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4. 그 외 여러분들께서 이 책을 읽으실 때 마음에 떠오른 느낌이나 질문들을 나누어 주십시오. 




오늘의 말씀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시편 26편 2절)